어린이날 하면 선물이다. “그날에는 우선 어린이를 위하여 모든 일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할 줄 압니다. 몇 가지 본보기를 들면, 그날에는 헌것으로라도 정한 옷을 입히고, 아이의 나이와 정도에 따라 장난감이라든가, 그림책이라든가, 무엇이든지 조그마한 것이라도 선물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97년 전 어린이날을 앞두고 나온 신문 보도(1923년 4월 29일)다. 장난감의 경우 소소한 수공품에서 첨단 전자기기로 바뀌었지만, 크게 보면 요즘과 큰 차이 없다. 오히려 1923년 어린이날 등장한 구호가 눈길을 끈다.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뭔가 해주기보다 뭔가 하지 말아 달라는 외침에서 고달팠던 당시 어린이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어린이날 행사하면 청와대 초청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서도 초청행사는 간혹 있었다. 대개 영부인 행사였다. 대통령 행사는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뒤 첫 어린이날이었던 1981년부터다. 서울시가 뽑은 300여명의 ‘모범’ 어린이가 청와대를 찾았다. 1986년에는 5월 2일에 행사를 진행한 뒤, 이를 녹화해 어린이날 당일 전국에 방송했다. 노태우 정권 들어 초청대상자는 소년소녀 가장, 낙도 어린이 등 소외계층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에 따라 행사 디테일은 조금씩 바뀌었어도 큰 틀은 이어졌다. “대통령 할아버지는 … ”으로 시작하는 어린이 질문에, 미소 지으며 인자한 표정으로 소박하게 대답하는 지도자. 인간적 이미지를 연출하는 연례행사로 이만한 게 없기는 하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