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오는 28일 무관객 개막한다고 선언한 이준동(63)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관객 없이 국제영화제를 개막하는 것은 전 세계 최초다.
전주국제영화제 이준동 집행위원장
코로나로 지난달 30일 열려다 연기
경쟁작만 최소인원 모여 본 뒤 시상
일부는 온라인 통해 관객에도 공개
발표 다음 날 서울 마포구 영화사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27년 차 영화제작자다. 영화사 나우필름·파인하우스필름을 이끌며 형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시’ ‘버닝’에 더해 ‘인어공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도희야’ 등 상업영화를 제작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 위원, 영화나눔협동조합 이사장 등 영화계 대소사에 참여해왔지만,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년처럼만 해도 선방이다 할 판에 이런 강적(코로나19)이 등장했죠. 코로나에 최적화된 영화제 플랫폼을 준비했다고 자부합니다.”
프랑스 칸영화제가 5월 예정이던 개최를 무한정 미루고,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는 아예 취소되는 등의 혼란 속에 표본이 될 만한 방식이다. 이 위원장은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사회가 몇 가지 성공사례를 쌓아가고 있다”면서 “영화와 영화인을 발굴·지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 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난 2월 중순부터다. 영화제측은 “정부가 요구하는 방역 수준보다 더 엄격하게 준비해서 하자”는 쪽이었다. ▶전체 좌석의 16.5%만 채우는 띄어 앉기 ▶모든 관객에게 일회용 장갑 지급 ▶철저한 방역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전주시 재난 안전대책본부가 반대했다. 이 위원장은 “영화제에 온 외지인들이 영화를 본 뒤 식당, 주점에 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감염을 우려한 것”이라며 “4월 27일 지금의 형태로 최종 타협해, 전주영화제조직위 이사회를 통해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또 “영화제 규모의 축소라기보다 팬데믹에 최적화된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입국 경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해외 게스트 행사는 일정을 미룰 때부터 온라인 전환을 고심해왔다.
전주영화제 측은 초청작 감독 및 참석 예정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온라인 상영은 OTT(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한 상영(국내 관객 대상)을 기획 중이며 불법복제방지 기술 적용 등을 적용해 작품의 저작권 보호에 힘쓸 것”이라고 알린 바 있다.
- OTT 플랫폼 방식은.
- “넓게 봐선 OTT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건 양방향 주문형 플랫폼이다. 전 세계 모든 국제영화제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을 고려하고 있다. 자존심 높고 고고한 칸영화제조차 생각 안 할 수 없다. 그걸 어떻게 설계할지는 누구도 답이 없다. 유럽쪽 영화 마켓에서 많이 쓰는 ‘페스티벌스코프’(온라인 주문형 영화제 플랫폼)가 있지만, 속도가 느리고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 우린 그것조차 없다. IT 강국이지만 이런 경험 자체가 없으니, 몇 명까지 동시접속이 가능할지, 보안관리와 과금은 어떻게 할지 등 숙제가 많다. 국내 플랫폼 사업자 및 전문가들과 논의 중이다.”
- 온라인 상영에 대한 창작자들 반응은.
- “올해 선정 작품이 200편 정도인데, 10% 전후 온라인 상영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동의한 작품이 상당수 된다. 나머지는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전주에 대한 신뢰를 느꼈다. 이렇게라도 상영하게 돼서 고맙다는 감독도 있고.”
예산 압박도 있다. 한 달여 연기된 일정으로 생긴 인건비, 온라인 전환 비용 등이다. 이 위원장은 “올해 예산 약 52억원 중 전주 시비 30억원은 다 썼다”며 “나머지는 영진위 영화발전기금(영화관 티켓값 3%) 지원과 협찬, 티켓 판매인데 협찬이나 티켓 판매는 불가능해졌다. 영화발전기금을 이럴 때 더 풀어야 하는데 영진위가 그 역할을 못 한다”며 답답해했다.
올해 전주영화제는 영화계 거장의 경험과 철학을 관객과 나누는 ‘마스터클래스’ 부문에 벨기에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더 차일드’) 감독 다르덴 형제를 내정했었다. 유럽의 대표적 사회파 거장이다. 최초 방한을 코로나19가 막았다. 이 위원장은 “아쉽다”면서 다만 “마스터클래스는 영화제를 준비하며 조금 더 챙겨보려 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영화제 세부 사항은 곧 발표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온라인 상영에 대해 “이미 동의한 작품이 100편 가량”이란 표기를 “이미 동의한 작품이 상당수”로 5월 6일 바로잡습니다. 영화제 측은 '100편 가량'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영화 편수라며 여전히 해당 감독 및 제작사와 세부 사항을 협의 중이고 아직 완전히 동의 받은 작품 편수라고 특정하기 어렵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