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신고 있는 양말 좀 벗어줄 수 있나요?”
지난달 22일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학생 A씨(22)에게 교직원 B씨가 다가가 물었다. 교내 부서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함께 일을 한 지 3일째 된 날이었다. 교직원 B씨는 “모 대학교에서 섬유 관련 실험을 하고있다”며 “양말을 벗어주면 새 양말을 주겠다”고 했다. “10시간 이상 신던 양말이 필요하니 퇴근 후에 달라”고도 했다.
어떤 연구인지 묻자 B씨는 ‘모 대학의 연구’라 하다 ‘지인의 개인사업’이라며 말을 바꿨다.불안해진 A씨는 같은 경험을 한 학생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SNS에 글을 올렸다. A씨는 “여학생의 양말을 뺏거나 사들여 변태 행위를 벌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했다”고 했다.
A씨가 SNS에 글을 올리자 제보가 쏟아졌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여학생은 총 12명. 같은 대학에서 단정한 차림의 남성이 연구 목적으로 흰 양말을 요구했다는 점이 동일했다.
2015년부터 ‘양말 연구’…과방 찾아와 요구하기도
12명의 제보자들은 교내 열람실, 자료실과 과방 등 학교 곳곳에서 양말을 요구하는 남성을 만났다고 주장한다. 해당 교직원의 인상착의와 같다고 진술한 사람은 5명이다. 나머지는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생김새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 제보자는 “남성이 과방으로까지 따라 들어와서 양말을 돈 주고 사겠다고 말했다”며 “방에 혼자 있는 상황이라 해코지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벗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업계획서엔 ‘고품질의 오래가는 양말’
A씨는 “양말 사업을 준비한다던 B씨의 지인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구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며 “연구에 대한 내용을 아느냐는 질문엔 대답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B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말부터 지인과 함께 양말사업 구상을 했고 교내 학생들 5명 내외에게 양말을 받았다. 억지로 뺏은 것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지 않냐”고 답했다. 또 “사업계획에 대해 지인이 대답을 회피한 것은 교직원의 신분으로 겸직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난처해질까 봐 그랬던 것”이라며 “해당 학생에 대해선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변호사, “법적 처벌 대상 아냐”
성범죄 전문 채다은 변호사도 “어디에 침입해서 양말을 훔쳤다면 모르지만 해당 사건은 성범죄로 보기 어려워 처벌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2년 전 여학생의 양말을 빼앗거나 구입해 변태행각을 벌인 남성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 사건은 그와 다르다는 것이다. 한편 이 대학 관계자는 "해당 사건이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며 "확인 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