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법률주의 훼손이니 책임 행정과 거리가 먼 주먹구구식 국정이니 하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 제대로 된 당·정이라면 욕먹더라도 국민에게 사과하고 원래 지급하려던 하위 70%에게만 지급하든지, 아니면 총선 때 약속을 군말 없이 지키든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부자들 목을 비틀어 줄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기상천외한 해법을 고안해 냈다.
정부 꼼수에 ‘재난기부금’ 반발
시키는 대로 하면 내 자유 잃어
#기부는_내_선택_내_이름으로
하지만 상위 30% 아니라 10%, 아니 0.1%도 이번 재난지원금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 선택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지만 특히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받아야 한다. 지난 4·15총선에 참패한 보수 더러 이 정권 미우니 발목 잡으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보수로 생각하고 보수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정부가 내 도덕성까지 재단하며 내 삶에 끼어드는 걸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론몰이가 무섭다고 이 둑을 한 번 터주면 처음엔 기부, 그다음엔 토지공개념이나 이익 공유제, 결국엔 사유재산권처럼 보수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가치마저 부지불식간에 잠식당할지 모른다.
내 얘기가 아니라 프랑스의 보수주의 정치학자 토크빌(1805~59)의 분석이다. 그는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보다 더 처참한 것은 보지 못했다”며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획일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선 정부가 개인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침해할 권리가 있다고 상정하고 모든 사람의 일에 간섭하며 개인적 차이를 향해 반감을 드러낸다”고 우려했다. 또 “개인에게 박탈한 모든 특권은 정부가 혼자 차지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 증오는 커진다”고 했다. 미국 보수주의 사상가 러셀 커크(1918~94)도 『보수의 정신』에서 자꾸 위(정부)에서 내려오는 선의로 포장된 강제를 받아들이다 보면 개인은 교체 가능한 단순한 숫자가 돼 최후의 자유까지 잃어버린다고 경고했다.
혹자는 있는 자의 관용적 태도, 혹은 공동체적 가치를 내세워 자발적 기부를 호소하는 동시에 여기에 반기를 드는 사람을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돈을 탐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표하면서도 보수의 품격을 보여주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정부의 강제적 ‘자발적 기부’에 맥없이 손을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을 단순한 숫자의 총합으로 취급하는 정부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가령 좀 귀찮더라도 정부에서 받은 만큼 내 이름으로 취약계층에 기부할 수도 있고, 곤란을 겪는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한 번 할 외식을 두 번 하면서 가라앉은 소비를 진작시키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무슨 방식이 됐든 내 이름을 걸고 내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결정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지극히 개인적 영역인 도덕까지 정부가 맘대로 재단하려는 걸 막을 수 있다.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에서 저자는 “개인이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분야에서만 도덕이 도덕일 수 있다”며 “타인이, 그것도 정부가 개인의 도덕을 결정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라고 했다. 그런 길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권한다. #기부는_내_선택_내_이름으로.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