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코로나19 초기 중국발 감염을 통제하지 못해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지만, 이후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중심이 돼 광범위한 진단 검사와 공격적 감염자 추적·대응으로 감염 확산을 막는 데 성공했다. 의료계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실패를 교훈 삼아 코로나19 격리 병동을 세우고 감염자 동선을 다른 환자와 겹치지 않게 하는 등 치료·예방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국민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을 실천하며 감염을 막는 데 최선을 다했다. 개인의 자발적 방역 실천은 미국·유럽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여서 한국이 더는 지구촌 변방이 아니라 세계 선도국으로 우뚝 섰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됐다.
상황 발생 전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이념 벗어나 전문가 의견 수용하며
국민 합의 기반으로 정책 수립해야
먼저 외교·안보정책도 선제적이어야 한다. 질본은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긴급사용승인제도를 통해 신속히 진단키트의 임시 사용을 승인했다. 이를 통해 확진자를 빠르게 식별해 감염을 최소화했을 뿐 아니라 미국 등 100여 개국에서 한국산 진단키트를 요청하게 했다. 외교·안보정책도 선제적일 때 효과가 크다. 상황 발생 이후 수습하는 건 대응이 쉽지 않고 대가가 크다.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엄청나게 반발한 데는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사전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배치한 점도 작용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시아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미·중 어느 한 편에 편승하기보다는 한국 헌법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원칙을 근간으로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일본·호주·인도 등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한다면 미·중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국가 이익을 지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과학적·현실적 외교·안보정책이 필요하다. 코로나 대응에 성공한 데는 질본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의 의견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반면 문 정부는 대북 협상에 매달려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핵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외교·안보에서는 상대국 의도보다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핵 능력은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데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폐기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대북 정책을 펴는 건 국민 생명을 지키는 최고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대북 협상에 도움을 기대하며 중국에 경도돼 한·미동맹을 경시하는 자세도 한국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중국은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동북아 패권을 차지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일본 등과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고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진단한다.
외교·안보정책에도 국민 공감대가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에서 국민은 성숙한 시민임을 입증했다. 외교·안보 분야도 청와대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서는 제대로 된 정책을 세워 밀고 갈 수 없다. 이념·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국민 합의를 기반으로 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9월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자주·평화·민주의 3원칙을 내건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수립돼 김영삼·김대중 정부의 대북 정책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는 국민이 주인이 됐을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