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알린다며 사망환자까지 찍어 올린 의사 유튜버

중앙일보

입력 2020.04.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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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충주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가 지난 15일 교통사고로 실려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유튜브 캡처]

지방의 한 의대 교수가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들을 진료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올려 의료 윤리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영상엔 교통사고 환자가 진료 중 숨을 거두는 장면과 환자의 항문 등 내밀한 신체 부위가 여과없이 나타나 과도한 신상 노출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29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건국대 충주병원의 응급의학과 A교수는 지난달 28일 ‘ER story(응급실 일인칭 브이 로그)’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그는 응급실에서 근무한 지 15년이 넘었다고 밝혔다. 이어 채널 소개란에 “모든 에피소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1인칭 시점으로 촬영했다. 질병의 진단과 과정을 좀 더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의료인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좀 더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실제 응급실 진료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고 단서를 붙였다.

건국대병원 교수 의료윤리 논란
환자 동의 받지 않고 알몸도 노출
네티즌들 “선 넘었다”…결국 삭제
병원 “사전 인지 못 해, 윤리위 개최”

A교수의 말대로 채널에 올라온 영상엔 적나라한 응급 현장이 담겨 있었다. 특히 지난 15일 올린 ‘Ep. 6 외상환자의 심폐소생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실제상황/병원 다큐멘터리’편에선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고 실려 온 남성 환자를 상대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기도를 열기 위해 호스를 삽관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환자의 얼굴과 병원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 환자의 성기는 모자이크로 처리했다. 하지만 체모나 상체 대부분은 그대로 노출됐다. 치료를 받던 환자는 심폐소생술 도중 사망했다.  
 
다음날(16일) 올라온 ‘Ep. 7 항문에 무엇을 넣었나요?/아파도 꺼내야 해요’라는 제목의 영상에선 항문에 이물질이 낀 환자가 등장한다. 역시 환자의 민감한 부위는 모자이크했으나 둔부에 손가락을 넣고 확인하는 장면, 기계를 넣어 이물질을 빼는 장면은 고스란히 찍혔다. 두 영상은 각각 6797회, 5054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영상에선 환자의 병명과 증상, 집도 시 유의사항 등 설명이 나왔다. 문제는 환자의 동의를 받고 촬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선을 넘었다”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16일 영상을 마지막으로 29일 새벽 유튜브 채널은 삭제됐다.
 
해당 병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병원에서는 전혀 몰랐던 사실로 오늘 알게 됐다. 자체적으로 윤리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일반인들도 볼 수 있는 공개된 곳에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응급실 상황을 찍어 올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의료진의 유튜브 영상 업로드 범위를 둘러싼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11월 의사들의 소셜미디어 사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여기엔 ▶식별 가능한 환자 정보 게시 금지 ▶소셜미디어상의 게시물 공개 범위 설정 신중 등이 포함됐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