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저소득층은 더 가난해질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저개발국은 빈곤에 허덕일 수 있다. 선진국과 저개발국,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격차는 크게 벌어진다.
[김기찬의 인프라]
페테르센 박사는 최근 경제정책저널인 「경제 서비스(Wirtschaftsdienst)」지에 '코로나 사태가 국제 분업에 미칠 수 있는 5가지 영향'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의 첫마디는 "코로나 사태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레이스의 출발 신호가 될 수 있다"였다. 국가별 자력갱생, 각자도생의 시대를 촉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페테르센 박사는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경제위기와 관련, 다섯 가지 변화가 몰아칠 것으로 예측했다. 독일의 경제 상황을 예를 들며 분석했지만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테르센 박사의 기고를 그의 진단과 함께 여러 현상을 조합해 설명하는 형식으로 소개한다. ( )안은 이해를 돕기 위한 추가 설명.
1. 국제분업의 범위가 줄어든다 - 외국 아웃소싱 대신 국내 생산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국제 노동 분업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는 게 페테르센 박사의 진단이다. 그는 "독일과 같은 국가는 국제 노동 분업의 범위를 최적화해 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는 이렇다. 예비 제품(부품 등)이 (공급망에) 고장나면 대체품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생산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부품 공급망이 원활하지 않자 세계 각국의 공장이 가동을 멈추거나 가동률이 확 줄어든 것과 같은 이치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원활하지 않으니 생기는 현상이다. 벤츠의 가동률이 11%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각국의 봉쇄조치로 부품 공급이 제대로 안 되어서다.
그래서 페테르센 박사는 "생산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부품의 아웃소싱을 포기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리쇼어링 즉 저임금 국가에 있던 생산 시설을 고임금이지만 자국으로 이전하는 현상이 활발할 것이라는 게 페테르센 박사의 예상이다.
2. 생산 시스템의 재배치에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 보조금 지급, 고율 관세 부과 등 보호책 확산할 듯
기업이 자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은 개발도상국에서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사실상의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생산하면 생산비용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국가가 이를 지원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협력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만 외면하거나 각자 계산기를 두드리며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죄수의 딜레마란 개념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정부의 지원정책에는 가격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현지 공급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형식일 수 있다는 게 페테르센 박사의 전망이다. 세금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는 국영기업의 설립도 고려할만하다. 이런 조치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대한 개입이지만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가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이 경우 우려되는 점도 있다. 세계 각국이 생산시설의 국내 이전(리쇼어링) 경향을 보이면 특정 제품(부품)을 소수의 외국 공급업체가 독점하는 형국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런 회사는 시장에 상당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된 국내 공급업체를 정부가 지원해서 설립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페테르센 박사는 봤다.
예컨대 일본이 반도체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중단함으로써 국내 반도체 업체가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가 이에 대응해 뿌리 산업을 육성하려 발 벗고 나선 것과 같은 시나리오다.
3. 산업 정책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 독자 생존 위한 체계적 육성책 마련
외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 또는 산업의 종속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책 차원에서 국내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기업 안정대책을 내놓으면서 기간산업에 대해 복합적인 지원책을 담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현금 지원에 그치지 말고, 중국이나 미국처럼 체계적인 산업 육성책이 필요하다.
4. 경쟁 우위로서의 저임금의 중요성은 줄어든다 - 자동화로 질병에 따른 생산력 감소 대체
자동화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노동력 손실이 생산 능력에 영향을 덜 미친다는 의미라고 페테르센 박사는 해석했다.
그는 "이런 추세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의 유행이 이같은 경향을 촉진할 것"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자국의 비싼 노동력을 굳이 많이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자동화와 디지털 확산으로) 독일과 같은 선진국은 생산 시설을 국내로 더 많이 옮기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5. 원자재가 거의 없는 개발도상국은 뒤처질 위험에 직면한다 - 저임금 국가 빈곤 심화
또 천연자원이 없는 개발도상국은 경제 발전 수준이 낮은 탓에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리쇼어링이 활발해지면 개발도상국으로의 자본 유입도 줄게 된다. 일자리를 제공할 기반시설을 구축할 돈조차 마를 수 있다. 이는 빈곤으로 이어지고, 개발도상국 노동력의 이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둔 향후 경제정책의 과제 - 저소득층 보호 위한 안전망 확충
국제 분업의 이점을 부분적으로 포기하면 가격이 상승한다. 이는 저소득가구의 손실로 이어진다. 이 비용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또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는 생산 시스템의 강도가 심화하면 오직 노동력(단순노동)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소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교육과 사회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산업정책에 있어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객관적 기준도 개발해야 한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