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세력은 무슨 사안이든 자체적으로 결정해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확보했다. 그렇다 해도 청와대와 민주당이 이헌재 전 부총리를 청해 경험에 바탕한 조언을 지속적으로 들었으면 한다. 국민을 이끌고 죽음의 계곡을 건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위험한 미로에선 중구난방식 다수결보다 성공해 본 경험자의 길 안내를 받는 게 낫다. 이헌재의 통찰력은 나침반으로 삼을 만하다.
“국난 돌파하는 데 600조원 필요해
페스트 버텨낸 뒤 르네상스 꽃펴”
위기 시대엔 현자에게 길 물어야
엊그제 청와대와 민주당이 홍남기 기재부 장관의 팔을 비틀고 소득 상위 30% 계층의 억지 기부까지 받아 관철시키기로 한 ‘국민 100% 재난지원금’은 12조원이다. 청와대는 5월 중 전 국민 지급을 지상 목표처럼 밀어붙이고 있는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12조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향후 들어갈 600조원의 자금 마련 계획을 이 정권이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라 곳간의 관리인이자 경제 책임자인 홍남기 장관은 등에 식은땀이 날 것이다. 앞으로 무수하게 쏟아져 나올 기업 도산, 가계 대출, 대량 실업, 구조조정에 투입될 비용을 어떻게 염출할 요량인가.
그래서 콩나물값을 깎는 주부의 심정으로 추경예산안 12조원 중 1조원만이라도 지방정부가 부담하도록 요구했는데 그것마저 이재명 경기지사가 거부해 무산됐다. 이 지사는 거부 이유를 “(경기도민 긴급지원용으로) 가용 자원을 최대한 긁어모았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여력이 전혀 없다”(24일 페이스북)고 밝혔다. 이 지사의 거부 이유는 나름 타당하다. 동시에 이재명의 진실이 드러난 점도 중요하다. 경기도민 1300만 명한테 10만원씩 주느라 1조3000억원의 예산을 풀었더니 더 이상 쓸 돈이 없어졌다는 현실이다. 이재명은 앞으로 경기도에 추가 재난이 닥치거나 지역 중소기업 혹은 자영업자를 위한 긴급 금융지원이 요청되거나 불가피하게 집행해야 할 사업 예산이 발생할 때 한 푼도 쓰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 사정이야 그렇다 쳐도 같은 일이 중앙정부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중앙정부마저 전 국민에게 재난 자금 한 번 푼 뒤 더 이상 돈 쓸 여력이 없다고 손드는 일이 벌어져선 곤란하다. 그래서 집권층에게 현자의 지혜를 구해 보라는 것이다. 이헌재는 나라 살림을 거덜내지 않고 600조원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에 페스트가 지나간 뒤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다. 위기는 위장된 기회다. 코로나 시기를 버티면 한국은 더 위대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