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낸 이력으로 각계각층의 조문이 장사진을 이룰 법도 했지만, 유족들은 평소 고인의 뜻과 코로나19 관련 장례식장 측의 방역 지침에 따라 음식 대접을 생략하는 등 조용히 조문객을 맞으려 했다. 유족들은 조의를 표하는 화환은 받되 조의금은 일절 받지 않았다. 유족 측 관계자는 “고인이 회장을 지낸 상우회 등 평소 가깝게 지내던 분들을 제외하곤 따로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오래 몸담았던 경제관료·한국은행 출신 인사들이 이따금 나타나 조용히 조문한 뒤 돌아가곤 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겉으로는 고인이 박 전 대통령을 도왔다곤 하지만 실제론 박 전 대통령의 기본적인 집무 프로세스부터 실질적인 정책 구상까지 모두 김 전 실장의 확인을 받았다”며 “화폐개혁을 두 번이나 주도하고 외환은행 설립을 주도하는 등 자신을 정치보다는 경제 전문가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은행 근무 시절 해외에서 일하면서 공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1952년 1차 화폐개혁에 이어 1962년 2차 화폐개혁 실무에 참여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어 “‘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이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곳에 갈 수 없다’며 본인을 모셔가려는 기업들의 제안을 뿌리칠 정도로 공직자로서 상당히 모범적인 삶을 사신 분”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경제정책의 전권을 위임했지만, 소리가 나거나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셨다. 당시 단 한 번도 TV에 얼굴이 나온 적이 없는데 방송사 기자들에게 ‘내 얼굴이 TV에 나오면 청와대 출입 불가’라고 말씀하셨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언론계에서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뒤를 이어 현정택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과 서성 전 대법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등이 조문했다. 이들은 각각 김 회장의 3남 김준경 전 한국개발연구원장과 사위 김중웅 전 현대증권 회장, 장남 김두경 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 등과 인연이 있다고 했다.
김인호·김영섭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영태 전 산업은행 총재,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대 전 금융결제원장, 조윤제 전 주미대사(현 금융통화위원), 오세정 서울대 총장, 권성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도 차례로 빈소를 찾았다. 이 전 장관은 “1972년 8·3 사채 동결 조치 전날 각 도별·업종별 사채 등록 현황을 계산해야 했는데, 상고 출신인 고인이 주판을 들고 와서 수치를 불러보라고 하곤 직접 계산하며 보고했던 기억이 난다”며 김 회장과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조 전 대사는 “세계은행 근무 시절 고인이 세계은행 임원단에 특별강연을 하러 오셨을 때 모셨던 인연이 있어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보좌관 시절에도 고인을 모셔서 한국경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청해 들었다”며 “상당히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송언석 통합당 의원(전 기획재정부 차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중수 한림대 총장(전 한국은행 총재),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최각규 전 경제기획원 장관 등은 근조기와 화환 등을 보내 김 회장을 추모했다.
하준호·임성빈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