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생존기] "마스크 16만장 3억에 만들어달라" 시장상인 살린 교육청 지혜

중앙일보

입력 2020.04.25 05:00

수정 2020.04.2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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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도 충분히 마스크나 가운 같은 방역 물품을 만들 수 있는 데 부족한 관심이 너무 아쉽습니다." 손중호(70) 광주광역시 시장연합회 회장은 지난 1일 상인회원들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수급난에 빠진 광주시교육청에 자체제작한 면 마스크 16만장을 납품했었다.
 

코로나 직격탄 맞은 재래시장 면 마스크 16만장 납품

손중호 광주시 상인연합회장. 사진 광주시 상인연합회

 
 지난 3월 광주시교육청 직원들이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 있는 광주시장연합회 사무실을 찾아와 "마스크를 만들 수 있냐"고 물어왔다. 손중호 회장은 "광주시교육청의 제안은 그야말로 목마름에 물을 적셔준 격이었다"며 "재래시장에서 하겠다. 우리가 해보겠다고 해서 계약부터 덥석 받았다"고 했다.

코로나19에 매출 직격탄 맞은 재래시장
광주시교육청 마스크 납품계약 제시하자
시장 상인들끼리 납품 물량 나누며 제작
광주 학교에 보내질 면 마스크만 16만장

 양동시장은 광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쩍 손님이 줄었다. 수산물·정육·채소·잡화 등 대부분 상점의 매출이 뚝 떨어졌다. 손중호 회장이 운영하는 의류점도 코로나19 사태 전보다 90% 가까이 손님이 줄었다.

광주광역시 양동시장 상인들이 지난달 30일 광주시교육청에 납품할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오랜 세월 재봉 일을 해온 상인들이라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중호 회장은 "광주시교육청에 우리가 하겠다고 약속한 뒤 시장 내 방송 마이크부터 붙잡고 마스크 만들 상가를 모집했다"며 "손님은 없고 임대료는 내야 하는데 마스크 16만장 계약이면 상인들 숨통이 트일거라 봤다"고 했다. 손중호 회장과 시장연합회가 나서면서 면직물 재봉이 가능한 커튼·이불·수선 등 상점 8곳이 면 마스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처음 마스크를 만들 때 어려움도 있었다. 마스크용 원단 수급이 쉽지 않았다. 마스크 시제품 생산도 만만치 않았다. 손 회장과 상인연합회 사람들은 마스크 생산 경험이 있는 의류 업체와 협업해 부족한 기술력을 극복했다. 면 마스크가 오염물질 차단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만큼 필터를 끼워 넣을 수 있는 기능도 더했다.

광주광역시 양동시장 상인들이 지난달 30일 광주시교육청에 납품할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다른 곳 가격의 절반 이하, 재래시장이니까 가능"

 
 마스크 1장당 납품단가는 1750원이다. 손 회장은 "재래시장이니까 가능한 가격"이라며 "다른 곳에서 3000원, 5000원 받을 일이라면 우리는 절반 혹은 그 아래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납기일도 빠듯했지만, 시장상인들이 밤낮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서로 일감을 나눠가며 해결했다. 상점마다 재봉이 가능한 옆집에 물건 납품을 나누고 나누면서 애초보다 2배 많은 20곳의 상점이 면 마스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손중호 회장은 "면 마스크를 만드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인데 받아온 원단을 서로 옆집에 가져다주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마스크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고 했다.
 
 광주시교육청이 면 마스크 제작을 의뢰할 당시 초·중·고 개학 예정일은 4월 6일이었다. 광주시교육청에 상인들에게 건네받은 마스크를 포장해서 각지 학교로 보내는 과정까지 고려해 16만장의 면 마스크를 일주일 내로 만들어야 했다. 양동시장 상인들은 이번 면 마스크 납품계약으로 2억8000만원을 받았다.
 
 손중호 회장은 "광주시교육청에 8곳 상점이 독점 납품하기로 계약했지만, 총 20곳이 면 마스크 제작에 참여했다"고 했다. 빠듯한 일정의 납품기일 조건이었기 때문에 제때 면 마스크를 학교에 건네주지 못할 것을 걱정한 상인들이 욕심부리는 대신 납품 물량을 다른 상점에 나눠준 것이다.
 

지난 1일 광주시교육청 직원들이 양동시장 상인들이 납품한 면 마스크를 각급 학교에 보내기 위해 포장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재래시장도 마스크·가운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재래시장이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도 했다. 손중호 회장은 "너무 전문적인 방역 장비는 어렵겠지만, 이번처럼 의료진들의 마스크, 가운, 장갑 등은 우리도 만들 수 있다"며 "재래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하고 대기업부터 먼저 찾는 점에 야속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했다. 손중호 회장은 시장상인들과 또 마스크를 제작해보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개학을 앞두고 마스크 수급에 고민하던 교육현장도 덕분에 한시름 놨다. 광주시교육청은 지난달 31일 양동시장 상인들에게 납품받은 면 마스크 16만장을 3일에 걸쳐 포장한 뒤 각급 학교로 보냈다. 시교육청이 코로나19 사태 직후 각급 학교에 방역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학생 1명당 3000원의 예산을 보내긴 했지만, 턱없이 모자라 걱정하던 와중에 납품된 마스크들이었다.
 
 광주시교육청은 양동시장 상인들에게 받은 면 마스크를 포함해 개학 전까지 면 마스크 41만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비축용 보건 마스크 62만장, 보급용 일반마스크 26만장도 확보한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지금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긴 하지만, 양동시장에 제안할 당시에는 더 어려웠다"며 "광주시교육청이 자체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만큼 어려운 재래시장 상인들과 상생하는 방안으로 면 마스크 납품계약을 추진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상생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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