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밝혀진 국보 제229호 물시계 ‘자격루’(自擊漏)의 ‘이름 없는’ 제작자 4명이다. 이들은 조선 중종 31년(1536) 완성된 ‘자격루 항아리’에 새긴 제작자 12명 중 일부로, 그간 글자가 마모돼 식별이 안 되다가 최근 보존처리를 거치며 전체 이름이 확인됐다.
중종 때 다시 만든 조선 표준 물시계
현존 항아리 표면 등 보존처리 완료
12명 제작자 중 흐릿했던 이름 복원
이공장·안현·김수성·채무적 확인
자격루는 물이 증가하고 감소하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 조선시대 국가 표준 시계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에서 세종대왕(한석규)이 노비 신분 장영실(최민식)의 재능을 알아보고 의기투합하는 핵심 계기로도 등장했다. 사료에 따르면 세종 16년(1434) 임금 지시로 장영실이 물시계를 제작했지만, 이것은 전해지지 않는다.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됐는데,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은 사라지고 물통들만 남아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보존처리를 마치자 그간 정확한 관찰이 어려웠던 수수호(왼쪽) 상단의 명문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조 당시 주조 돋을새김(양각)한 명문에는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12명의 직책과 이름이 세로로 새겨져 있었다. 그동안 몇몇 글자가 마모돼 12명 중 4명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들이 온전하게 밝혀진 것이다. 각각 이공장(李公檣, ?~?), 안현(安玹, 1501~1560), 김수성(金遂性, ?~1546), 채무적(蔡無敵, 1500~1554)으로, 『조선왕조실록』『국조인물고』『문과방목』에는 자격루 제작 시기에 이들이 명문의 직책을 맡았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이들 사료에는 안현, 김수성, 채무적이 천문 전문가로 자격루 제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나머지 제작자 8명은 영의정 김근사와 좌의정 김안로를 비롯해 유보, 최세절, 박한, 신보상, 강연세, 인광필이다.
보존처리를 마친 자격루는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는 대로 국립과천과학관 전시를 거쳐 조선 왕실 유물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 져 소장될 예정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