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게 아니다. 실물경제의 충격이 예사롭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급격히 줄어든 여파다. 사실상 경제활동을 멈춘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이 언제 바닥을 딛고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 이 만큼 뼈아픈 건 없다. 당장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게 확실해 보인다.
결국 기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 대부분이 2분기 최악의 성적표 받아들 처지다. 때마침 찾아온 유가 급락에 정유업계는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기업이 흔들리면 수출도, 고용도 함께 무너진다. 기업발 신용경색을 막으려면 한은도 쓸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해야 한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타이밍이 또한 중요하다. 실기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돼선 안 된다. 우려가 없지 않다. 친정부 성향 인사가 새 금통위원이 됐기 때문이다. A 위원은 참여정부에서 경제보좌관을, 현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거쳤다. B 위원은 현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을 적극적으로 방어해왔다. 특히 B 위원이 금융위원장 추천을 받은 것을 두곤 “이제껏 금융위와 아무 관련이 없었는데 추천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사실상 청와대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한은 노조도 반발하는 이유다. 내부에선 여당이 압승한 총선 결과와 맞물려 한은이 정부를 보조하는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은법 제4조는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조화를 이루라는 거지 따르라는 게 아니다. 급하다는 이유, 위기라는 이유로 정치와 권력이 중앙은행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 된다.
셋째, 한은의 존재가치를 새로 정립할 시점이다. 비상시국에서 한은이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포스트 코로나19도 준비해야 한다. 중앙은행으로서 한은의 위상은 이미 흔들리는 중이다. 디지털 금융의 성장으로 화폐의 가치와 쓰임새가 달라지고 있다. 블록체인·인공지능·빅데이터 등은 하나하나가 한은 입장에서 새로운 과제다. 통화정책의 효과도 예전 같지 않다. 저성장·저금리가 지속하면서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별 반응이 없고, 물가는 오를 것보다 내릴 걸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다 한은에 조사국만 남겠네”란 말이 농담만은 아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