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살인과 업무상촉탁낙태(산모 등의 부탁을 받아 낙태한 의사를 처벌하는 것)죄 등으로 기소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다. 이 결정 뒤 1년이 흐른 올해 4월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1부(재판장 김선희·주심 임정엽)는 A씨의 살인과 낙태죄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이 판결이 있기 3일 전, 같은 법원 형사11단독은 낙태죄로 기소된 또 다른 의사 B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B씨는 낙태죄에 대한 헌재 결정보다 1년이나 앞선 2018년 4월 기소됐다. B씨가 1심 판결을 받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그 사이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고 B씨는 무죄를 받은 것이다.
낙태 두고 법원마다 다른 결과, 왜
B씨의 낙태 무죄 판결문은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무죄의 근거로 봤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법률 조항에 대한 위헌이고, 헌재가 주문에서 입법 시한을 두고 그다음 날부터 법의 효력을 잃도록 했어도 위헌이라는 점은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는 판례다. 법원은 이 판례에 따라 B씨에게 적용된 낙태죄는 소급해서 효력을 잃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헌재 결정 취지를 고려하면 A 씨를 처벌할 수 있다”고 썼다. 처벌에 대한 새 논의가 필요한 낙태는 헌재가 제시한 ‘임신 22주 내외’에 해당하는 낙태이지, A 씨처럼 34주 된 태아를 낙태하는 것까지 헌재가 전면 허용하라고 한 건 아니라는 시각이다. 아직 헌재가 제시한 입법시한이 남았다는 점도 짚었다.
헌재 결정 1년, ‘낙태죄’는 무죄일까 유죄일까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죄 판결도, 유죄 판결도 논리적으로 일리는 있다”며 “유죄 판결을 한 재판부는 임신 22주까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꼼꼼히 보고, 헌재 취지대로 입법이 된다면 A씨는 처벌 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헌재 결정은 주문만 효력을 갖고 이유는 그렇지 않지만, 이 결정대로 입법이 된다면 차후에라도 A씨가 재심을 청구하는 등의 문제가 없을 것으로 재판부는 본 것"이라고 말했다.
엇갈린 판결, 남은 시한은 8개월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