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자의 선택은 우리 사회 지배적 투표 패턴이다. “한국이나 미국 같은 다수대표제·양당제 국가에서 정치혐오와 더불어 나타나는 ‘반감의 정치’ ‘응징의 정치’ 모델”(강준만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이다. 상대적으로 더 싫은 ‘최악’의 정당을 떨어뜨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덜 싫은 ‘차악’의 정당을 찍는다. 정치권은 공약 개발보다 상대를 공격해 유권자의 반감이나 증오를 자극하는 데 매달린다. 증오 마케팅이 정치의 기본 동력이 되면서, 정치혐오의 악순환이 깊어진다.
정치혐오 뚫고 한 표 행사하는 날
매번 차악 택하는 유권자의 고심
정치권은 반사이익 의미 새겨야
코로나19 사태로 대충 묻어가는 깜깜이 선거란 탄식 속에 냉소와 불신이 고개를 든다. “투표해서 바뀐다면 선거는 사라질 것”이란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만의 말이 떠오른다.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의 데이비드 런시먼은 “국민투표는 일견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않다. 무대로 끌려 나온 관객은 자신들이 만들지도 않은 제안에 단순히 예스나 노를 말한다”고 회의한다. 이때 시민들은 선거 이벤트를 지켜보는 구경꾼에 머물며, 민주주의는 총 든 쿠데타 없이도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국내 젊은 층 일각에서는 투표나 정당정치를 불신하고 ‘착한 소비’나 SNS 이슈 참여 같은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개인화된 정치를 구현하는 ‘반(反)정치의 정치’ ‘정치 소비자 운동’ 경향이 발견된다. 선거 시즌에만 유권자 대접이고 투표로 별반 달라지지 않는 기성 정치제도 자체를 응징하는 식이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가 이들의 슬로건이다.
그러나 아무리 회의와 불신이 크고 냉소가 깊다 해도 당장 내 손에 주어진 투표권이란 소중한 무기, 권리를 포기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칼럼니스트 홍세화의 말대로 “민주시민에게는 정치혐오와 냉소에 빠질 권리가 없다. 정치적 동물로서 우리는 분노를 적극적 참여로 표출해야 한다.”
내일 이맘때 쯤이면 많은 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석패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이기지 못해도 선거 결과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내가 지지한 정당이 이겨도 상대가 잘못한 반사이익이 크다는 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내일 승자의 기쁨을 누릴 분들은 금배지의 영광이 ‘반감과 응징의 정치’에 기댄 절반의 승리일 수 있음을 뼈아프게 새기길 바란다.
가진 게 투표권밖에 없는 우리 유권자들은 그 유일한 힘을 행사하러 투표소에 간다. 때론 정치에 신물 나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다. 계절은 꽃피는 봄, 21대 총선일 아침이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