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송호근 칼럼] 코로나정국, 눈물겨운 표심

중앙일보

입력 2020.04.1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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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사실 나는 우리 지역구에 어떤 사람이 출마했는지 아직 몰랐다. 무책임하다. 아니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신경이 온통 코로나 사태에 꽂혀 있었다. 가족, 친지, 직장동료와 국민이 코로나 습격에 정말 안전한지 불안한 판에 정치 소식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확진자 정보가 뜨면 그곳을 피해 다녔다. 지하철, 버스도 불안했다. 식당과 편의점까지 기피 대상이 됐다. 대부분 앱쇼핑, 택배기사가 눈물겹게 고마웠다. 손소독제를 갖고 다녔다. 정치권의 언쟁은 시정(市井)의 비명소리에 비하면 한가하고 한심했다. 비례정당 37개는 너무 벅차 분간하기도 싫었다.
 
급기야 이런 생각도 들었다. 투표장에 줄서다 감염되지는 않을지, 좁은 투표장에 들어서서 용지를 받고 기표소를 나올 때까지 괜찮을까 하는 근심 말이다. 신경과민 탓이라 해도 투표권과 건강권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더 따져봐야 했던 것은 아닐까. 정은경 본부장은 자칫 선거정국에 영향을 미칠까 조심스러워 했는데, ‘조용한 전파시기’란 말이 훨씬 섬뜩하게 다가왔다. 영국은 지방선거를 1년 연기했고, 폴란드도 우편투표를 결정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스마트폰 왕국인 우리는 앱투표도 가능할 텐데.

시민이 보살필 적자입정 정치
코로나가 덮은 이슈없는 총선
경제역병을 방역할 실력은 있나
흘러간 옛 노래는 지옥행 예약

아예, 이른 아침 사전선거에 나섰다. 중무장을 한 유권자들의 행렬은 백여 미터 정도, 2미터 간격, 체온을 재고 비닐장갑을 끼자 근심은 조금 잦아들었다. 민주시민의 행렬에 벚꽃잎이 휘날렸다. 코로나 위협을 뚫고 저 뒤틀린 정치를 어쨌든 추슬러 보겠다는 시민적 의지에 대한 봄의 위로였다. 그 순간, 시민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뒤처진 아이에 더 마음이 쓰이는 부모의 심정이 그런 것일까. 문화 한류는 세계인을 매혹하고, 경제는 글로벌 무대를 뛰어 다니고, 시민사회는 부쩍 성숙했는데, 성질부리고 발목 잡느라 제구실 못하는 발육부진 정치가 못내 안타까웠던 거다. 시민이 외려 보살펴야할 적자입정(赤子入井)정치 한국. 정치권은 이런 눈물겨운 표심을 알기나 할까.
 
1988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8번 총선, 그런데 이번처럼 이슈가 통째로 실종된 선거는 처음이다. 대체로 총선은 정권의 중간평가 형태를 띤다. 실정, 악정, 무능에 대한 응징이 그 자그마한 투표용지에 각인된다. 공수(攻守)에 나선 전사들간 설전 수위가 높아지고 악성 제보가 난무해도 정권 심판은 그런대로 이뤄졌다. 유권자의 표심은 놀랍도록 공평하다. 황금 분할이거나 독점 견제였다. 이슈가 살아있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는 그런 역학이 사라졌다. 정권이 코로나 뒤로 숨었다. 아니 코로나가 정권의 얼굴에 가면(假面)을 씌워줬다. 출범 후 2년 간 시행된 ‘적폐 청소’와 경제 실책은 더 이상 심판대 메뉴가 아니다. 지난 해 8월 이후 코로나 발발 직전까지 6개월은 정말 허송세월 난장(亂場)이었다. 공수처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끝내 밀어붙였다. 공수처는 정권의 사후대비 철조망이고, 연동형비례제는 민주주의 허점을 극대 활용한 독점장치다.
 
여기에 윤석렬총장이 정권 사수의 희생양으로 떠올려졌다. 윤총장의 정의감과 강단을 극찬해 현정권의 최종병기로 기용한 것이 불과 열 달 전 일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윤총장이 충복이었다면 과연 이랬을까. 검찰총장이 충견(忠犬)이기를 바라는가. 시민적 정의의 관점에서 검찰의 정치예속화 강요가 오히려 법치국가의 적이다. 올 가을쯤 공수처의 검찰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민주화 33년 간 쌓아올린 국민의 공덕(公德)은 허망하다.


투표용지에 후보는 잘 분간되지 않았다. 격려투표 아니면 견제투표? 그래, 미래 건사에 힘을 실어 도장을 꾹 눌렀다. 가까운 미래의 최대 위협은 아무래도 경제폭풍이다. 게오르기에 IMF 총재가 지난 금요일 폭탄선언을 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이 몰려온다고. 189개국 중 170개국이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 것임을 구체적 수치를 들어 경고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대재앙에 한국경제가 견딜 수 있을까. 한국은 이미 경제역병(疫病)에 걸려 있다. 그것은 존재감없는 청와대 경제팀, 외골수 정의의 사도, 이념 기갈증이 든 정권 후방군단의 합작이었다. 정권이 목을 맨 소득주도성장은 경제활력을 무작정 제거한 표백제였다. 쓰러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코로나의 최후 일격을 받고 주저앉았다. 그들에게 베푼 재난지원금, 대출금, 세금감면, 부가 혜택 등은 사실상 경제악정으로 잃어버린 소득의 회수다. 회수치고는 초라하다. 보은(報恩)투표? 시달린 데 대한 위로금일 뿐이다.
 
메르스는 3파에서 종식됐다. 코로나는 이제 1파의 끝지점, 2파와 함께 경제역병이 5천만 인구를 강타할 것이다. 경제역병은 이념에 뒤틀린 시장과 기업 적대 시장에서 창궐한다. 재정 살포에도 미래 기획이 필요하다. 현정권의 실력으로 경제역병을 막을까. 총선 직후, 청와대와 여당이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른다면 한국은 분명 지옥행 급행티켓을 예약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투표장을 나오는 사람들 머리 위로 벚꽃잎이 하릴없이 떨어졌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