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는 교리를 철두철미 따르지 않은 모양이다. 부제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가 달린 대담집 『박완서의 말』에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1998년, 67세 박완서가 역시 가톨릭 신자인 미수(米壽·88세)의 수필가 피천득 선생에게 고해성사를 불평하는 대목이 있다.
집 마당에 활짝 핀 꽃들
생명은 죽음으로 거듭나
코로나19로 부활절 긴장
자가격리도 사랑의 실천
그 둘의 대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짜고, 삶의 오미(五味)를 맛본 어르신들의 유머와 해학이 아닐까 싶다. 박완서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도 죄가 될 수 있다”고 반성하고, 피천득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알맹이만 있으면 껍질은 자연히 생겨난다”고 답한다.
박완서의 글 중에 ‘우리 마당의 부활절 무렵’이 있다. 고인의 딸 호원숙씨가 어머니 타계 2년을 맞아 묶은 『노란집』에 실렸다. 제목의 ‘노란집’은 박완서가 말년을 보낸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 집을 가리킨다. 2000년대 초반에 쓴, 노년의 일상을 따듯하게 응시한 글들이 빛난다.
부활절 무렵이니, 박완서가 이 수필을 쓴 때는 아마도 4월 초·중순께일 것이다. 그는 딸과 함께 집 마당에 피는 꽃을 세어본다. 100까지 헤아리다가 그만둔다. 100평도 안 되는 마당이지만 꽃들이 만개하면 ‘비현실적인 황홀경’이 연출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무리 하찮은 것들도 생명이 있는 것들은 타고난 사명대로 살다가 죽고 자기 죽음을 통해 거듭난다고 성찰한다.
박완서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예수를 기리는 부활절을 직접 언급하진 않는다. 다만 100세 장수시대를 의식한 듯, 하나같이 오래 살고 싶어하는, 150살을 살아도 아마 더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욕망을 돌아본다. “거듭남의 영원한 순환, 단 죽지 않고는 거듭나지 못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그 면에서는 냉이꽃만도 못한 것 같다”고 꾸짖는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 구석구석이 마비됐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지구촌 전역을 뒤덮었다. 감염과 죽음의 공포가 극심하다. 오는 12일 부활절을 앞두고 긴장감도 최고조 상태다. 대다수 교회가 부활절 온라인 미사·예배를 약속했건만 일부 중·소형 교회는 오프라인 예배를 강행할 방침이다.
예수가 지금 다시 온다면 무슨 말, 어떤 행동을 할까. 이웃의 아픔·고통보다 종교의 원칙·제도를 앞세우는 게 하느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영원은 아닐 듯싶다. 박완서가 걱정한 냉이꽃만도 못한 인간은 더욱 아닐 것이다. 세계적 신학자 N T 라이트는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최근 시사 주간지 타임에 이렇게 기고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애통(lament)이라는 성서의 전통을 회복하는 일 같다. 무슨 일을 설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아니다. 대신 애통해하는 것이다. 자가격리 중이더라도 성령이 우리 안에서 애통해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깃드는 작은 성전이 된다.” 최악의 부활절을 대비하는 경구처럼 다가온다. 성경도 다음 같이 말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