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24.71달러로 단숨에 튀어 올랐다. 전날(20.31달러)과 견줘 21.7% 점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간 유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추락을 거듭하던 국제 석유시장에 오랜만에 전해진 낭보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감산 합의 발표 이후 영국 북해 브렌트유 값은 장중 50% 가까이 뛰기도 했다. 장중 배럴당 36.29달러를 찍었는데 전일 대비 47% 높은 가격이다. FT는 “하루 유가 상승 폭으로는 역대 최대”라고 전했다.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역으로 증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석유 생산량 3위인 러시아가 2위 사우디아라비아 견제에 나섰다는 판단에 빈살만 왕세자가 ‘응징’에 나섰다. 러시아 역시 증산 계획을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그 사이 50달러대였던 유가는 20달러 선까지 수직 추락했다.
유가 전쟁으로 미국 내 셰일산업까지 역풍을 맞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잇따른 전화 회담 끝에 일일 생산량 기준 1000만 배럴 이상 감산이라는 원칙에 합의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 원유 수요는 일일 2000만 배럴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1000만~1500만 배럴 감축으로는 유가 시장을 안정시키기에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미다.
결국 칼자루는 1위 원유 생산국인 미국이 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미국이 먼저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번 합의는 무용지물이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OPEC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는데 이들 회원국은 결국 미국이 먼저 감산에 나서는지, 텍사스 철도위원회(TRC, 철도위원회란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 내 석유ㆍ가스산업을 총괄하는 기구)와 캐나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