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드문 ‘판사 교체’ 뒤엔 SNS 45만건 압박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4.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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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피고인 ‘태평양’이모(16)군의 전 재판장 오덕식 부장판사에 대한 트위터 키워드 검색 건수가 나흘간 44만건을 넘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일보가 31일 다음소프트의 소셜 매트릭스로 찾은 해당 기간 오 부장판사 트위터 검색량은 44만 7623건이었다. 지난 3월 27일 재판장 교체 청와대 청원이 게시되고 30일 사건 재배당이 결정되기까지 트위터에서 언급된 ‘오덕식’ 키워드의 검색량이다.

n번방 재판 오덕식 검색 급증
조국 영장 기각한 판사의 76배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벌해왔다”
청와대 청원 등 교체 압박 심해
오 판사, 여론에 밀려 재판 포기

지난해 12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권덕진 부장판사의 결정 전후 나흘간 검색량(5873건)의 76배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구속했던 송경호 부장판사, 조 전 장관 동생 조모씨의 1차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명재권 부장판사의 결정 전후 검색량과 비교해도 각각 38배와 25배 많았다. 청와대 청원 등을 통해 “성범죄와 관련해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다”고 오 부장판사를 비판한 이들의 비난 강도와 n번방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얼마나 강했는지 확인해준 수치인 셈이다. 그가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오 부장판사는 가수 고(故) 구하라씨를 폭행하고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전 남자친구 최종범(29)씨 등 일부 성범죄 피고인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여성계 등의 비판을 받았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별과 나이, 정치적 성향을 넘어 n번방 사건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드러내는 지표”라고 분석했다.  
 
오 부장판사는 전날 “재판을 맡기에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재배당을 요청한 뒤 이날 연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중앙지법은 사건을 형사22단독 박현숙(여) 판사에게 재배당했다.


판사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본다. 청와대 청원 등 여론의 압박에 밀려 판사가 재판을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이름이 오른 판사가 먼저 소속 법원에 재배당 요청을 한 것도 처음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한 여성 판사는 “판결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판사 개인이 이렇게 비난받는 현상은 우려스럽다”며 “여론에 등 떠밀려 재판부를 교체한 것처럼 비친 건 건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 변호사도 “이런 식으로 재판부가 교체되는 건 사건을 넘겨받은 새 재판부에도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범죄전담재판부 재판장을 맡았던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현재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형량이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이젠 법원이 변화해야만 하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