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오늘 밤 12시와 내일 0시

중앙일보

입력 2020.03.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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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0시부터 미국발 입국자도 2주간의 자가 격리를 지켜야 한다. 코로나19의 해외 역유입이 늘고 있어서다. 유럽발 입국자를 대상으로 21일 밤 12시부터 검역을 강화한 데 이은 조치다.
 
특별 입국 절차를 언제 시행하느냐를 두고 날짜와 시간을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정’이란 표현 때문이다. “21일 자정부터 시행한다”고 하면 ‘21일 0시’로 생각하는 이도 있고 ‘21일 밤 12시’로 이해하는 이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엔 ‘자정’을 ‘밤 12시’로 올려놨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개념이다. 우리 조상들의 시각은 좀 달랐다. 예전엔 하루를 열둘로 나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등 십이지(十二支)의 이름을 붙여 불렀다.
 
‘자정’은 전날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를 이르는 ‘자시’의 한가운데를 뜻한다. 자시가 십이시(十二時) 중 첫째 시인 점을 감안하면 예전엔 자정을 시작점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자정은 하루의 시작인 0시와 마지막인 밤 12시의 개념을 함께 품은 말이다. ‘21일 자정’이라고 하면 사전적 의미론 ‘21일 밤 12시’이나 ‘21일 0시’로도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자정 대신 하루의 시작은 0시, 끝맺음은 밤 12시로 표현하면 오해 없이 어떤 시점을 정확히 나타낼 수 있다. “21일 밤 12시부터 시행한다”고 하면 헷갈릴 염려가 없다. 일몰 후 밤 11시를 지나 밤 12시가 되므로 21일이 끝나는 시각임이 명백하다. “22일 0시부터 시행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21일 밤 12시’는 ‘22일 0시’인 셈이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