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 촬영물을 불법으로 제작·유포한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의 유료회원들이 올린 글 중 하나다.
수사기관이 주범 조주빈(25)을 포함한 운영자뿐만 아니라 돈을 내고 n번방에 들어가 불법 촬영물을 본 회원들도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익명성과 강한 정보보호로 알려진 암호화폐의 기능에 숨을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가 강한 정보보호인 것은 맞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수사기관은 마치 금융당국의 협조를 받아 불법 거래 내역을 살펴보는 수준으로 n번방의 대다수 유료회원의 암호화폐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거래소 통한 거래내역 100% 확인 가능
국내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것은 주식과 같은 것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밝혔다. 암호화폐 거래도 누가 주고받았는지 거래소에서는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한 거래소에서 주고받은 게 아니라 복수의 거래소가 끼면 거래내역 파악이 조금 까다로워지지만, 현재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모두 수사기관의 정보 제공에 협조하기로 한 상태라 찾아내기는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경찰, 암호화폐 구매대행 명단 확보
이 중에는 송금액과 송금 주소를 알 수 없는 ‘모네로’라는 암호화폐를 통해 거래한 사람들도 있는데, 모네로 자체는 익명성이 높은 암호화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A사에 “70만원어치(유료회원 가입비) 모네로를 구매해 달라”고 신청한 내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심지어 A사에서 암호화폐를 구매대행할 때 본인확인까지 거쳐야 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며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익명성 때문에 암호화폐를 썼다는데 완전 바보들 아닌가’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물론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송금했거나 개인 암호화폐 지갑을 통해 거래했다면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은 나온다.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는 국내 수사기관의 요청에 불응할 수 있고, 개인 암호화폐 지갑을 통해 직거래한 내역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래소 측 "수사 협조 공감돼 형성"
하지만 대다수의 유료회원은 단순히 n번방에 가입하기 위해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송금한 만큼, 수사기관에서 빠르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경찰은 23일 주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 공문을 보내 유료회원 거래 내역에 대한 정보 요청에 나선 상태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다른 일도 아니고 이런 일에는 다른 거래소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수사기관에 협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수만명이라는 유료회원들의 정체도 곧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