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노트북 PC를 챙겨 친정 부모나 자매 집으로 출근하는 ‘재택 이주민’도 생겨났다. 민폐인 줄은 알면서도 아이와 함께 전업주부인 언니 집으로 출근해 일하는 식이다.
맞벌이 부부 ‘애 좀 봐주세요’ 전쟁
이웃 돌아가며 육아품앗이도 한계
매끼 식사·도시락 챙기기도 고생
직장맘 “힘들다, 답답하다” 아우성
정부, 가족돌봄휴가 최대 25만원 지원
문제는 실효성과 돈이다. 돌봄과 관련한 제도들은 대부분 ‘사정이 있는 경우 회사는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어 회사·부서장과의 합의가 필수다. 최 과장 부부 역시 유통 분야라는 회사 사정상 재택근무가 어렵고 휴가를 길게 쓰기도 여의치 않다.
가족돌봄 휴직과 가족돌봄 휴가는 무급이고, 근로시간 단축도 하루 1시간이 넘어가면 임금이 깎인다. 연차는 사실상 ‘미래 수당’을 포기하는 건데, 연차를 아끼자고 아이를 돌봐주는 ‘이모님’을 구하거나 돌봄 시간을 연장할 경우 시간당 추가 비용이 최소 1만원 이상으로 만만치 않다. 당장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도 용돈은 필수다.
국내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A씨는 “일주일에 나 하루, 아내 이틀씩 연차를 쓰고 나머지는 이모님을 더 써서 막고 있는데, 비용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교 후 오후 4~7시까지만 봐 주시던 걸 하루 종일로 며칠 더 돌리면 이모님에게 거의 월급 수준 금액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회사·근로자 함께 비상상황 극복해야”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가족돌봄휴가자에게 1인당 하루 5만원씩 최대 5일간 특별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맞벌이의 경우 부부가 각각 5일 동안 25만원씩, 총 5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이미 지원금 신청사례가 나흘 만에 1만 건을 넘어섰다.
맞벌이 가정이 겪고 있는 의외의 고충이 있다. 바로 식사 챙기기다. 마케팅 기획업체 에스피랩의 하영아(45) 실장은 “매일 도시락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며 웃었다. 정부 권고로 휴원에 들어갔던 학원들이 잇달아 다시 문을 여는 가운데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식당이나 배달음식을 자제하고 도시락을 지참해 달라’는 학원 측 권유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 실장은 출·퇴근 시간 틈틈이 장보기 배달을 시키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놓은 뒤 학원에 다니는 자녀를 위해 매일 새벽 점심·저녁 도시락을 싼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난제 해결의 책임이 개인에게 미뤄지고, 시간·돈·인맥 같은 개인이 가진 자원과 운에 따라 격차가 크게 난다는 점”이라며 “근로자 복지 제도의 존재 이유가 ‘함께 살아가기’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회사와 근로자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비상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