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최고 200만원 지원, 중앙정부도 재난기본소득 줄까

중앙일보

입력 2020.03.24 00:03

수정 2020.03.2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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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곳간 문을 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코로나 보릿고개’에 직면한 서민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정부도 지난 21일 3조8000억원에 달하는 ‘재난기금’을 각 지자체에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위해 생계비 지원에 써달라고 나서면서 현금지원을 하는 지자체가 늘어날 전망이다. 재난기금은 재난의 예방과 복구를 위해 지자체가 매년 적립해두는 법정 의무기금이다.
 
유례없는 지자체의 현금성 지원에 정부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주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정부는 오는 2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2차 추경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코로나 생계비’ 지원 전국 확산
대구시 63만 가구에 최대 90만원
전주·기장 등 취약계층에 보조금

정부는 막대한 재정 문제 등 고심
“전국민 재난기본소득은 신중해야”

코로나19로 가장 피해가 큰 대구시는 23일 긴급생계지원 예산 4960억원을 편성했다. 저소득층 10만2000가구와 중위소득 75% 이하와 100% 이하 53만 가구를 대상으로 50만원에서 최대 90만원까지 지원한다. 지원금은 50만원까지는 선불카드로, 5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한다. 선불카드는 3개월 기간 내에 대구·경북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지원방식은 선불카드·상품권 등 지급


지방자치단체 생활지원금 도입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중앙정부 차원의 보편적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이날 소득이 적은 가구를 대상으로 한 ‘경남형 긴급재난소득’을 우선 도입한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의 보편적 긴급재난소득을 제안했지만, 정부와 국회의 결정을 마냥 기다릴 수 없다. 가용 가능한 재원을 우선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긴급재난소득은 선불카드 등으로 지급된다.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소득이 흘러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필요한 재원은 재해 및 재난 관련 기금을 우선 사용하기로 했다.
 
대전시는 소득 수준과 세대원 수에 따라 최대 63만원 상당의 긴급 재난생계지원금(희망홀씨)을 주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중위 소득 50% 초과~100% 이하인 저소득층으로 17만여 가구가 혜택을 본다. 1인 가구 30만원, 2인 가구 40만5000원, 3인 가구 48만원, 4인 가구 56만1000원 등 가구원 수에 따라 선불카드로 지원한다. 전체 예산 규모는 700억원 정도다. 허태정 시장은 “모든 국민에게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실제로 지급하려면 막대한 국가 재정이 필요하다”며 “시 재정만으로는 어려운 만큼 국가가 면밀히 검토해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강원도는 1200억원 규모의 생활안정지원금을 마련했다. 대상은 소상공인과 기초연금·실업급여 수급자 등 총 30만명이다. 1인당 40만원 정도가 돌아간다. 경기도 화성시는 매출이 10% 이상 줄어든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1인당 평균 200만원의 긴급생계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부산에선 처음으로 기장군이 긴급재난지원소득 지급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원 규모는 150억원이다. 실직자와 소상공인 등 코로나19 여파로 생계가 어려워진 서민에게 현금 지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재난소득’에 불을 댕긴 건 전북 전주시다. 전주시는 지난 13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5만여명에 대해 긴급생활비로 1인당 52만7158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전주형 재난기본소득’이다.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든 일용직 근로자와 대리운전기사 등이 주요 지원 대상이다. 지역은행 체크카드 형태로 지급되며 3개월 안에 써야 한다.  
 
서울시와 경남도, 충남·강원도가 잇따라 전주시 모델과 유사한 형태의 선별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현금이나 지역상품권을 풀어 움츠러든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다.
  
일부 “재난소득은 선거용 포퓰리즘” 주장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기장형 재난기본소득’ 처럼 ‘재난 기본소득’이란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지자체 지원은 취약 계층에 주는 보조금 성격이 강하다. 반면 ‘재난기본소득’은 결이 다르다. 기본소득은 재산 규모, 근로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무조건 지급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4·15 총선을 앞두고 ‘재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라는 시각도 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국민들에게 현금지원을 해주는 것은 맞다고 보지만 기본소득이 아닌 긴급지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문석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도 “자영업자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긴급 지원이 있어야 한다”면서도 전국민에게 나눠주자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조 교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소비심리가 아예 위축되고 나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해도 시장에서 소비하지 않을 위험성이 존재하니 그 전에 빠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전·창원·대구=최종권·김방현·위성욱·김정석 기자,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