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깨고 0.5%P 빅컷
불과 20일 전 기준금리를 동결을 택했던 한은도 더 버티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각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입국 및 이동 제한 조치 취하고 있어, 글로벌 경기 위축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국내 성장과 경기 하방 위험이 이전보다 증대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지난주부터 시장은 임시 금통위 개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인하 여부보다 인하 폭에 관심이 쏠렸는데 인하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0.25%포인트 낮출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0.5%포인트 인하 카드를 꺼냈다. 7명의 금통위원 중 임지원 위원 1명만 ‘0.25%포인트가 적절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금융위기 이후 12년 만의 임시 금통위
이번에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등판한 모양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월 금통위 때 낮췄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늦었어도 내리는 게 옳은 방향”이라며 “재정정책보다는 시장에 즉각적으로 돈이 풀리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인하만으론 효과가 없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만으로 근본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자리 잡고 있는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직전 기준금리는 5.25%였다. 급격한 충격이 몰려오자 한은은 2.00%까지 급격히 금리를 끌어내리며 돈 풀기에 나섰고, 나름 효과를 봤다. 하지만 이번 인하 직전 1.25%는 이미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지금은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는 상황이라 실물경기 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
"흐름 바꾸기엔 한계 있어"
금리가 낮아지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다(원화가치 하락).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연준이 대폭으로 금리를 내렸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환율 상승이나 자금 유출 우려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며 “다만 예상외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면밀히 지켜보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 조정 여부에 관해서 ‘당연히 당초 전망에 못 미칠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그 숫자를 전망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고 답했다. 기준금리 인하 대응이 늦었다는 ‘실기론’에 대해서는 “(지난 2월) 금리를 인하했다면 시장에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라며 “타이밍은 지금이 훨씬 적기라고 아마 많은 사람이 생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가 고려하면 사실상 제로금리
기준금리 0%대는 한국 경제가 처음 가보는 길이다. 1% 초반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금리는 사실상 제로인 셈이다. 통상 금리가 낮아지면 가계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줄어든다. 낮은 금리가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경제가 성장하고, 다시 물가가 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그렇지 않았다. ‘R(경기침체)의 공포’가 확산하면서다. 금리가 낮아져도 불안감에 소비는 늘지 않았고, 1%대 금리에도 예·적금엔 돈이 몰렸다. 경제성장률도, 물가도 제자리걸음이니 금리를 올릴 명분이 없다. 결국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으면 저금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금리가 낮아지면 돈 굴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 와중에 대출금리는 낮으니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릴 가능성도 있다. 김상봉 교수는 “정부의 초강력 대책으로 겨우 집값을 붙들어 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번 금리인하가 집값에 미칠 여파가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석·성지원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