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집권당은 명분 없는 편법과 거짓말의 정당임을 스스로 천명했다. 두 사건 모두 백주 대낮에 부끄럼도 모르고 진행됐다. 권리당원이라는 이름의 불특정 다수가 주도하는 형식을 취했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천상 민주당 전체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확립됐다. 그동안 55 대 45로 민주당의 우세를 예상하던 한 정치학자는 “금태섭 탈락 사건은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문빠 당원들이 이토록 국민을 우습게 여기나. 친여 지지층에서 투표 포기자가 속출하고 민주당을 혼내주겠다는 중도 유권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민주당 중도 밀어내기의 역주행
금태섭 배제·비례당 오만의 상징
다만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지더라도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선거에서 진 쪽이 정신을 차려 그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중간 선거에서 승리한 쪽은 자만에 빠져 대권을 놓치곤 했다. 여기서 중간선거란 대선과 1년 이상 떨어져 실시된 총선을 말한다. 예를 들어 2000년 4월 총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권은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한테 참패했다. 여소야대의 굴욕 속에서 김대중은 겸손하게 선거를 준비한 반면 이회창은 대세론의 오만에 빠졌다. 결국 2002년 대선에서 김 대통령은 후계자 노무현을 발탁해 이회창을 꺾었다. 총선 패배를 정권 재창출로 역전시켰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총선 승리의 자만에 빠져 정권을 빼앗긴 경우다. 그는 2004년 중간선거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고 나서 임명된 이해찬 국무총리는 철도 파업 와중인 2006년 3·1절에 골프를 친 사건으로 물러난다. 오만의 한 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에서 연거푸 대패해 보수 쪽에 정권을 넘겨주었다. 1996년 총선도 마찬가지다. 김영삼의 집권당이 승리하자 1997년의 대권은 반대파인 김대중한테 돌아갔다. 집권 세력의 오만과 분열, 야권 세력의 절치부심과 연합으로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됐다. 이런 역사적 결과들은 대권의 향배가 그 1~3년 전에 치러진 총선 결과와 반대로 나타나는 선거의 법칙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니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해도 심기일전, 민심을 다시 떠받들고 정책을 조정해 정성스럽게 대처한다면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예외가 있긴 했다. 2016년 총선은 중간평가 선거인데도 2017년 대선과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이는 박근혜 정권의 오만과 분열에 대해 워낙 가혹한 중간 평가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박 정권은 회복 탄력성을 아예 상실해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지금 문재인 집권당의 지난 3년 실정이 박근혜 정권 못지않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2016년처럼 궤멸적 상황이 전개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