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쯤 정규앨범 14집이 나옵니다. 4곡 완성됐고 6곡 작업 중이예요. 곡 쓸 땐 전화도 안 걸고 안 받는, 은둔의 상태죠. 스스로 궁지로 몰아넣어야 한 글자라도 써지는 걸 보면, 망가지는 것 자체가 나를 끌어올리는 과정인 듯도 싶고….”
담담하게 내뱉는 말에 서린 침잠과 고독. 올해 결성 35주년을 맞은 록밴드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그렇게 자신과 싸우고 있다. 2012년 13집 이후 8년 만에 나오는 정규앨범을 위해서다. 지난해 초 보컬 박완규가 재결합하면서 발표한 싱글 ‘그림’을 포함해 총 10곡 정도가 담긴다고 한다.
올 가을 14집 앨범 두문불출 작곡 몰입
"스스로 궁지로 몰아넣어야 곡이 나와"
음악과 멀어지는 공포감에 예능 다 끊어
"이런 사랑 받을 자격 있나 되돌아봤다"
'사랑할수록' 부른 김재기가 떠난 날…
“지난해 8월 어느 행사장에서 ‘사랑할수록’ 기타를 치는 중에 갑자기 쇼크가 왔어요. 코드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말을 하려는데 언어가 안 되는 겁니다. 순간 정신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갔는데 비몽사몽 중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를 부르는 게 좋겠다’는 말이 들려와서 ‘이렇게 끝이구나’ 했지요. 하필 그날이 8월11일, 1993년 김재기가 하늘로 떠난 날이라 더욱….”
부활3집의 명곡 ‘사랑할수록’을 부른 제3대 보컬 김재기가 빗길 교통사고로 숨진 날과 같은 날짜. ‘재기가 나를 데려가는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한 달여만에 회복했다. 필리핀에서 둘째 아이를 뒷바라지 중인 아내가 그 후 한 달에 보름씩 한국에 와서 그를 챙겨준다. 주변에선 운동과 규칙적인 식단 등을 권하지만 정작 자신은 “오묘한 물음표가 있다”면서 “고독하지 않으면 곡을 쓸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행복하고 즐거우면 음악과 멀어지는 듯해서 내가 날 가둬두는 거예요. 아름다우면서 위로가 되는, 눈물을 흘리고 친구가 되는, 그런 음악이 분명 필요하고 그게 제가 맡은 몫이거든요. 결국은 나란 사람이 죽기 전까지 남겨야 하는 것은 음악이니까.”
나를 알아봐주는 희열의 중독성에 위기
“(당시에) 3년 정도 쉬지 않고 예능에 출연했는데, 그땐 마치 다시 태어난 듯했죠.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나름의 희열이랄까. 음악을 그렇게 오래하고도 체험한 적 없었는데. 그 희열의 중독성이 강해서 어느 순간 그게 줄어들면 망가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어요.”
지휘자 김태원이 작사·작곡까지 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아카펠라곡으로 합창단이 대회 은상을 타는 과정이 전파를 탔다. 프로그램은 폭발적 인기 속에 각종 상을 휩쓸었고 김태원 본인도 연말 KBS연예대상 특별상을 탔다. 정작 그는 “‘청춘합창단’ 때 늘 ‘내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라디오스타’ 나갈 때도 ‘내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자격이 있을까, 한없이 부족하고 말도 잘 못하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오는가’ 의아했다”고 돌아봤다.
‘청춘합창단’ 지휘봉, 딸에게 물려줄 보물
“원래 모으는 걸 싫어해서 ‘부활’ CD도 집에 없어요. 트로피들도 창고에 따로 둡니다. 자만할까봐 그런 거죠. 그런데 이것만큼은 고이 간직하고 딸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겁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거죠.”
“제 딸에 대해 저는 전혀 염려하지 않아요. 고꾸라지든 뒤처지든 사랑에 실패를 하든, 그 모든 게 음악을 하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이란 그런 것이죠. 누군가가 내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곡을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제 할 일을 하는 것. 신이 있다면, 음악은 신의 숨결이기 때문에요.”
2011년 그가 쓴 책 『우연에서 기적으로』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이제는 어째서 내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고민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떠오르는 것을 음악으로 만들고, 그게 혹시 이 시대에서 알아주지 않더라도 먼 훗날 한 사람이라도 내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작곡할 것입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