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격리시설 만든다고 초급간부에게 '방빼라'는 軍

중앙일보

입력 2020.03.1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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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 한 군 부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격리시설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초급 간부들에게 숙소 퇴거 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에 초급 간부들이 반발하자 해당 부대는 퇴거 대신 다른 방안을 찾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군 장병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활동의 일환으로 부대 방문 차량에 대한 발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군 당국에 따르면 경기 고양에 위치한 육군부대는 전날(12일) 원룸 형태의 독신자 숙소 1개 동 거주 인원 150여명에게 퇴거 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는 취지의 지침을 전달했다. 이 계획에는 해당 거주자들이 다른 간부 거주지에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는 방안, 또는 약 30분 거리의 기업 연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방안 중 선택해 오는 19일까지 퇴거를 완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부대는 신종 코로나 감염자와 의심환자를 위한 1인 1실 격리공간을 확보하는 데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부대 내 반발 심하자 "퇴거 방안은 검토하지 않겠다"
"공간은 한정돼있는데 1인 1실 운용 어려워"

퇴거 대상 후보로 지목된 간부들은 반발했다.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계획이 세워진 데다 초급 간부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였다. 해당 부대 한 간부는 “위에선 확정된 방안은 아니라고 하지만 군 위계상 사실상 일방 통보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위관급 이상 장교와 여성 간부가 거주하는 다른 2개 동은 그대로 둔 채 주로 부사관 등 초급 간부가 머무는 특정 동이 타깃이 됐다”고 말했다. 계약서를 쓰고 입주한 만큼 주거권 침해를 주장하며 단체 행동을 하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당 부대는 이 계획을 거둬들였다. 부대 측은 “신종 코로나 상황 장기화에 따라 선제적으로 예방적 격리 인원 수용시설을 준비하기 위해 독신자 숙소 퇴거를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했을 뿐”이라며 “일부 간부들의 불편 사안이 접수돼 해당 방안은 더 이상 검토하지 않고, 다른 부대 내 시설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관련 두 번째 긴급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군 안팎에선 이번 일이 신종 코로나 격리시설 확보를 둘러싼 일선 부대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인 1실 격리 원칙을 각 부대 여건에 맞게 운용하라”는 군 당국의 지침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지역 한 간부는 “지난 26일 인천의 한 부대에서도 초급 간부 퇴거 계획이 부대 내 반발에 철회된 적이 있다”며 “부대 입장에선 1인 1실 확보에 원룸 형태인 독신자 숙소를 활용하는 게 가장 손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공간을 찾지 못하다보니 일부 부대에선 1인 1실 격리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드는 고육책이 등장했다고 한다. 공반기(한개 기수가 퇴소한 뒤 다음 기수가 입소할 때까지의 기간)인 신병 생활관에 응급실과 같은 비닐막으로 1인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군 관계자는 “한정된 부대 내 공간에서 1인 1실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기준이 지금이라도 일선 부대에 하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