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글로벌 아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미국

중앙일보

입력 2020.03.13 00:17

수정 2020.03.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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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워싱턴특파원

 
한국에서 ‘마스크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각한지 독자 이메일을 받고 실감했다. 지난달 미국 감염병 전문가를 인터뷰해 기사를 썼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일반 대중은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한 이유를 소개했다. 이메일을 보내온 독자들은 CDC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는데 기사가 잘못됐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난감했다. 팩트를 기반으로 쓴 기사를 믿지 못할 정도로 한국 사회 불안감이 커진 것 같았다. CDC의 코로나19 예방 수칙 원문을 링크로 첨부해 회신했다. CDC의 마스크 관련 권고는 대상자에 따라 나뉜다. ①아프지 않은 일반인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②아픈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마스크를 써야 한다. ③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은 마스크를 써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도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백악관에서 코로나19 기자회견을 했다. [AP=연합뉴스]

 
한국에선 마스크가 생명줄인데, CDC는 왜 같은 질병 예방법을 다르게 말할까. CDC에 자문하는 윌리엄 쉐프너 밴더빌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마스크 착용자가 질병에 덜 걸린다는 근거가 약하다”고 설명했다. 마스크를 쓰고도 감염되고, 쓰지 않고도 감염되지 않는 사례가 섞여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부 기관이 쓰라고 권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우선순위 문제도 있다. 미 보건최고책임자인 제롬 애덤스 박사는 “마스크는 일반인의 코로나 예방에는 효과가 없지만, 의료인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고 했다.
 
미국은 이제 막 감염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백악관 코로나 대응팀은 “일반인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같은 메시지 전파에 나섰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감염 집중 지역인 시애틀·뉴욕 인근 주민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밀집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도시에서도 마스크 쓴 사람을 볼 수 없다. 


 
쓰는 게 안 쓰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는 불안감은 이해한다. 순기능도 있다. 손으로 코와 입을 덜 만지고, 만원 버스나 지하철처럼 CDC가 권고하는 6피트(1.8m) 거리 두기를 지키기 어려운 환경에선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정부와 국민이 마스크에 소모하는 에너지가 과하지 않나 싶다. 코로나발 경제 위기가 닥치고 있는데 경제부처 장관들이 마스크 찾아 뛰고 있다니 하는 얘기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촘촘히 선 줄은 되려 위험을 만든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용기를 낼 때다. 과학이 미국과 한국에서 다를 것 같지 않다.
 
박현영 워싱턴 특파원
 
※ CDC 권고 대상을 '아프지 않은 일반인(If you are NOT sick)'으로 바로잡았습니다. 기존에는 ‘환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