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웅(37)씨는 대학 4학년 때 갔던 캄보디아 봉사활동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흙탕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현지 아이들과 깨끗한 물로 마음껏 샤워하는 자신의 모습이었죠. 학교를 졸업한 뒤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면서도 그날의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2013년 4월 아름다운가게의 소셜벤처 창업전문과정 수업을 듣기 시작했죠.
안전제일주의자였다 ‘물 문제’에 눈떠
물 공유 테마로 창업해 다양한 사업 시작
지쳤을 때 찾은 울릉도에서 매력 느끼고
프로젝트 팀 만들어 새로운 일 벌여 나가
첫 서비스는 무상으로 절수기를 제공하고 절감되는 수도요금을 서비스요금으로 받는 형태였어요. 막상 실행에 옮겨보니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수도요금이 너무 저렴해서 절감비용에 한계가 있었던 데다가 예상보다 호응도가 낮았던 겁니다. 이대로는 사업 형태로 이끌어가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죠. 물값이 싸다 보니 물을 왜 절약해야 하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다는 점이 딜레마였습니다. ‘물 공유’ 문제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 내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이 문제라는 걸 깨달았어요.
서비스를 만드는 일에 앞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심한 가뭄으로 인해 물 문제가 심각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워터스마트’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로 했죠. 한 아파트 내 가구별 물 사용량을 옆집과 비교해서 고지서 형태로 보여주었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어요. 바로 물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게 된 주민들이 엄청난 반응을 보여준 겁니다.
약 3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2015년 하반기부터 워터팜 핵심서비스 ‘물 공유 아파트 프로젝트’를 구축할 수 있었죠. 서울 성북구 3개 아파트(4648가구), 강동구 1개 아파트(78가구) 등 5000가구를 대상으로 물 공유 시범아파트사업을 2016년 3월부터 진행했어요. 테스트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물을 절약한 비용으로 국내외 물이 부족한 지역을 도울 수 있게 했죠. 우선 충청·강원 등 가뭄이 심한 지역 초등학교 분교에 생수를 공급하거나 수도관 연결 사업을 추진하고, 말라위·볼리비아 등 해외에도 식수필터나 물지게를 지원했어요. 2014년 4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정돼 3000만원을 지원받으면서 1년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 2015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H온드림오디션에 선정돼 6000만원을 지원받아 직접 제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죠.
심리적·경제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워터팜은 당분간 휴업하고 상래씨는 원래 목표였던 교육사업을 하기 위해 사회혁신 스타트업 컴퍼니빌더인 언더독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음 일도 함께하기로 했던 약속대로 찬웅씨도 합류했죠. 기존 소셜벤처들을 연합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단계별 창업교육을 진행하는 일이 주업무였어요. 하지만 창업과 창업교육까지 5~6년 정도 쉬지 않고 매진하다 보니 ‘번아웃’이 찾아왔죠. 서울에서 될수록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지인이 있는 강릉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울릉도 한 달 살이’ 프로그램을 접했습니다.
또 울릉도 사람들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4개월 정도 일하지 않고 휴지기를 갖는데요. 일종의 겨울방학입니다. 울릉도에 등록된 주민 1만 명 중 실거주하는 6000~7000명의 절반은 이 시기에 육지에서 지내죠. 일과 쉼이 분명하게 구분돼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한 달 살기를 마친 후 일 년 살기에 도전해보기로 한 3명은 정확히 2018년 12월 31일에 다시 울릉도로 들어갔죠.
3월 말쯤 다시 울릉도에 돌아갈 거라는 찬웅씨는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안전제일주의자였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 적어도 내 성향이 사업가 체질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어쩌다 보니 창업을 하게 됐고 또 계획하지 않았지만 울릉도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시도해서 현실화시키는 것, 설득하고 극복하고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죠.
자신의 변화에 대해 얘기한 그는 청소년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스스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 부모님이 정해준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부모님은 자신들이 먼저 경험해보고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건 모두 없애버리죠. 그러다 보면 모두가 다 비슷한 삶이 되는 것 같아요. 중·고생 또는 대학생 때는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학생'이라는 안전망이 있기 때문이죠. 무엇이든 의사결정권을 갖고 자기 삶의 주인이 돼보는 일을 테스트하면 좋겠습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