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서소문 포럼] 타다를 타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0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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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 스포츠본부장

A대학교 축구부에 신입생이 새로 들어왔다. 다른 선배들이 지저분한 운동복을 입고 경기에 나설 때 신입생은 깔끔한 옷을 입고 나왔다. 선배들이 틈틈이 담배를 피우면서 경기에 나설 때 신입생은 착실히 기술을 익히면서 실력을 키웠다. 선배들의 견제 속에도 신입생이 발군의 기량을 펼치자 그의 인기는 크게 올랐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선배들은 신입생에게만 특혜를 줬다고 주장하면서 심판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심판위원회는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다. 그러자 선배들은 학교 선생님에게 몰려가 신입생이 뛰지 못하도록 규칙을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깔끔한 복장과 긴 양말을 신었다는 이유를 댄다. 운동장이 신입생에게 유리하게 기울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신입생의 독주를 우려한 교장은 선생님들과 머리를 맞댄 끝에 ‘신입생은 기여금을 내야 경기에 뛸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낸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코로나 파동 속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A대학교 축구부는 우리나라 택시 업계, 선배 선수는 택시, 신입생은 후발 모빌리티 사업자 ‘타다’다. 심판위원회는 법원, 선생님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 할 수 있겠다.

타다의 장점은 서비스의 표준화
규제 앞서 서민 정서 헤아려야
언제까지 역주행 코리아 할건가

택시업계에선 지나친 과장과 비유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타다금지법’ 국회 통과 소식을 접한 서민들의 정서는 이에 가깝다. 스포츠 경기에선 신입생이나 전학생이 잘한다고 해서 그들을 퇴출할 수 있도록 규칙 자체를 바꾸진 않는다. 오히려 정정당당히 경쟁을 펼쳐 팬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택시업계와 국회에선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났다. 법원이 타다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지 일주일 만에 정부와 여·야 국회의원이 나서 규칙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다.
 

서소문 포럼 3/9

우리나라의 택시 요금은 세계 주요 도시 중에서도 싼 편에 속한다. 그 덕분에 서민들이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자정을 넘은 시각, 서울 한복판에서 변두리나 위성 도시까지 택시를 타도 약 2만~3만원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서민들은 버스나 전철 막차를 놓쳐도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만만한 택시요금 덕분에 우리는 자정을 넘겨도 친구나 직장 동료와 여유 있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
 
여기까지는 고마운 일인데 아쉬운 점도 많다. 저렴한 요금이 고맙긴 한데 문제는 정작 필요할 때 택시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택시를 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일이 다반사다. 승차거부를 당하는 경우도 잦다. 어렵사리 택시를 탄다 해도 기사의 훈계를 듣기 십상이다. 어설픈 정치 평론은 이제 신물이 난다. 담배 연기에 찌들은 택시를 타면 온몸에 냄새가 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불쑥 ‘타다’가 등장했다. 타다는 친절하고, 쾌적하다. 승차거부도 없고, 기사의 훈계 따위도 없다. 무엇보다도 타다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쾌적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표준화·균질화한 것이다. 타다를 타면 운전기사가 친절하고, 실내가 깨끗할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담배 연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택시는 들쭉날쭉하다. 친절한 기사분도 있지만, 무뚝뚝하고 퉁명스런 운전자도 많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타다’는 규격이 정해진 직사각형 경기장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플레이하는 종목이다. 택시는 경기장이 직사각형일 때도, 타원형일 때도 있다. 종종 경기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서민들이 택시를 멀리하고, 타다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그런데도 국회의원과 택시 업계는 서민들의 이런 정서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 택시 요금은 무척 싼 편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택시요금은 우리보다 2~3배는 비싸다. 뼈 빠지게 일해도 박봉에 시달린다는 택시기사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참에 택시요금 체계를 신중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규칙까지 바꿔가면서 신입생에게 불리한 장벽을 치는 건 명백한 반칙이다. 외국에선 고급택시와 우버에 개인형 모빌리티까지 다양한 신입생이 등장하고 있다. 무인주행 자동차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때도 두더지 잡듯 때려잡으면 그만인가. 언제까지 코리아는 역주행만 할 것인가.
 
정제원 스포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