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들어서자 아주머니들의 주문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칼 하나, 칼 둘.”
뽀시래기 주문 소리가 살벌해요. 칼 하나, 칼 둘. ㄷㄷㄷ. 그런데 아재, 제가 메뉴판 잘못 본 것 아니죠? 칼국수 한 그릇이 스벅 한 잔 값도 안 되네요.
아재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 공기밥도 1000원인데, 둘이 와서 5000원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니 가성비 짱이지. 게다가 망원 시장 안엔 군것질 거리가 많아서 식사 후 디저트까지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어 1석2조라니까.
아재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난 양념장만 넣고 비비는 것보다, 이렇게 무채를 듬뿍 넣고(쌓고) 비비는 게 더 맛있더라.
식당 아주머니(깜짝 등장) 간장만 넣었어요? 간장 한 숟가락에 고추장을 조금 곁들이면 더 맛있는데.
아재 네네(대답은 하면서도 아재는 절대 고추장 병에 손을 뻗지 않았다. 맛에 대한 아재만의 고집을 누가 말릴까)
뽀시래기 칼국수에 간장 양념을 넣을지, 고춧가루 양념을 넣을지 갈등이에요. ㅜㅜ.
아재 간장 양념은 콩나물 비빔밥에, 고춧가루 양념은 칼국수에, OK?
뽀시래기 아재가 시킨 대로 고춧가루 양념을 넣었더니 칼국수 국물이 완전 매콤한 게 맛있어요. 들깨칼제비 국물도 완전 고소해.
호로록, 호로록.
아재 칼국수, 원래 좋아해?
뽀시래기 완전! 특히 들깨가루 칼국수를 좋아해요.
아재 이번 주문은 퍼펙트!!!
아재는 젠트리피케이션과는 다른, 가성비 좋은 맛집들이 유명해지면서 벌어지는 아쉬운 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재 이렇게 저렴한 가격의 식당들은 원래 주머니가 가벼운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공간이었거든. 그런데 요즘은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찾는 거야. 을지로 노가리 골목도 가보면 온통 젊은이들밖에 없어. 어르신들이 밀려난 거지. 불편하거든. 이 집도 주말에 오면 어르신들은 찾아볼 수 없어. 온통 데이트 나온 젊은 커플들뿐이야.
뽀시래기 듣고 보니 좀 씁쓸하네요. 저도 망원동 가끔 오거든요.
아재 남자가 말이야, 데이트 하면서 여자 친구한테 2500원짜리 칼국수나 사주고 말야. 그럼 안 되지, 안 그래?
뽀시래기 왜요, 전 좋은데. 이런 시장 분위기도 느껴보고.
아재 그러다 매일 2500원짜리 칼국수만 사주면 어떡할래? ‘너 칼국수 좋하하잖아’ 이러면서. ㅋㅋㅋ.
뽀시래기 그건 싫어요. ㅠㅠ.
아재 콩나물밥은 전주가 유명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전주 분이라 어려서 콩나물 요리를 정말 많이 먹었거든. 콩나물밥, 콩나물김치….
뽀시래기 콩나물김치가 있어요?
아재 전주에선 콩나물로 김치도 만들어 먹는데 아삭아삭 씹는 맛이 진짜 좋아.
아재 특히 요즘은 콩나물밥을 많이 해먹을 때야. 왜냐하면 달래가 나올 때거든.
뽀시래기 달래랑 콩나물밥이랑 무슨 상관이죠?
아재 달래를 쫑쫑쫑 썰어서 간장에 넣은 ‘달래장’으로 콩나물밥을 비비면 별미거든. 무채 좀 넣고, 김 뽀시래기 좀 올리고, 달래장으로 비벼 먹는 거야.
뽀시래기 (김 뽀시래기, 무엇?)
아재 엄마가 해주신 콩나물밥의 콩나물은 늘 실처럼 축 처져 있었거든. 그런데 고향집의 콩나물은 아삭아삭한 식감이 제대로 살아 있잖아. 아주머니께 물어봤더니 확실한 차이가 있더라고. 우리 엄마는 밥을 할 때부터 쌀 위에 콩나물을 같이 얹어서 끓였기 때문에 콩나물 숨이 다 죽어버린 거지. 그런데 이 집은 콩나물을 따로 쪄서 밥 위에 얹어주더라고. 그러니까 이렇게 아삭아삭한 거지.
아삭! 아삭!
뽀시래기 그런데 김치가 좀 아쉬워요. 너무 시었어. 겉절이면 좋겠는데.
아재 이 가격에 겉절이까지 바라면, 당신은 참 염치없는 손님이지요. ㅋㅋㅋ.
뽀시래기 이건 들깨칼제비죠.
아재 칼만두도 있지. 그런데 만제비는 없구나. 왜일까?
뽀시래기 둘 다 밀가루 덩어리들이라 생각만 해도 배부르고 안 예뻐요. ㅎㅎㅎ.
아재 그럼 만제비는 안 어울리는 커플인 걸로.
뽀시래기 콩나물비빔밥에서 참기름 냄새가 나네요.
아재 아주머니, 밥에 미리 참기름을 넣어서 나오나요?
아주머니(또 등장) 네.
뽀시래기 그래서 고소했구나. 그럼 이 달달한 맛은 어디서 나는 거지?
아재 그건 무채. 무맛 자체가 달고 그렇게 양념을 했어. 약간 달달하게.
뽀시래기 아재는 장금이 삼촌. ㅋㅋㅋ.
사실 아재는 콩나물 값도 시장부터 마트 가격까지 모르는 게 없다. 중국산 콩으로 키운 것과 국산 콩으로 키운 콩나물의 가격과 모양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도 안다. 실제로 요리를 잘 하는지는 모르겠다. 안 먹어봤으니까.
식사를 마친 후, 아재와 뽀시래기는 망원 시장의 또 다른 명물인 고로케를 한 개씩 손에 들고 한강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마침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를 보고 아재가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니 뽀시래기가 한마디 한다.
뽀시래기 휴대폰으로 꽃 사진 찍는 사람들 보면 다 아재 아니면 아줌마더라고요. ㅋㅋㅋ.
기획·진행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