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갑자기 늘어난 폐렴 사망자…국제사회 지원 요청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0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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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긴 국경 봉쇄, 탈북자들이 전하는 북한 사정

평양시 피복공업관리국 산하 여성직원들이 재봉틀을 이용해 천 재질의 마스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응책으로 평소 옷을 만들던 주요 도시의 피복공장들을 마스크 생산 체제로 전환했다. [연합뉴스]

국경을 모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오대양 육대주로 퍼졌다. 한반도의 남쪽은 발원지인 중국 버금가는 감염 국가가 됐다. 반면 북한은 공식 통계상으로는 코로나 확진자가 단 한명도 없는 무풍지대다. 과연 북한의 발표가 사실일까. 서울의 탈북자와 북·중 국경의 대북 소식통들을 통해 한 달이 넘도록 국경을 꽁꽁 걸어 잠근 북한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았다.
  
탈북자들끼리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나누는 단톡방(단체대화방)에 지난달 중순 좍 퍼진 소문을 소설가 이주성씨 등 여러 명의 탈북자들이 전해왔다. 신의주 주민 수백명이 신형 코로나비루스(바이러스) 때문에 집단 격리됐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개중에는 “신의주 사는 친척이 격리를 당했다가 풀려났는데 버스에 태워 깜깜한 외곽 농촌 지역으로 보내는 바람에 정확하게 어디였는지도 모르더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신의주·청진 코로나 사망설 속출
엄격한 통행 제한, 직장서 숙식 해결
천 마스크 2겹 착용으로 버티고
증상자는 치료보다 격리부터 시켜

북한 당국의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보가 퍼지는 것은 중국 휴대전화망을 통해 탈북자들과 북·중 국경 지역 가족·지인들과의 통화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들 속에는 “감염자를 총살하고 화장했다”는 등 신빙성을 가늠하기 힘든 풍설도 섞여들기 마련이다. 진위를 가리기 위해 700여명의 탈북자가 가입한 NK지식인연대의 김흥광 대표에게 자문을 구했다.
 

김흥광 대표

코로나19 사망자가 있다는 소식이 탈북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데 사실일까.
“지난달 10일 의심환자가 집단 수용된 의주군 인민병원에서 치료받던 사람 가운데 세 명이 숨졌다고 한다. 우리가 파악한 첫 사망 사례다. 그 이후 사망자가 더 늘었을 것이다. 평북 철산의 광산 지역에서도 사망자가 있다고 한다.”(다른 탈북자는 청진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사망자는커녕 확진자도 없다고 하는데.
“보도를 믿나? 고난의 행군 시절 200만명이 굶어 죽었는데 북한의 기록에 아사자는 단 한명도 없다. 신의주 사망자의 진단명은 폐렴이라고 하는데 그 앞에 ‘신형’이란 두 글자만 안 붙였을 뿐이다. 2일 회령의 친척과 통화한 한 회원도 ‘사돈 아주바이가 폐렴으로 숨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평소보다 폐렴으로 죽었다는 사람이 많다.”
 
사망자가 속출할 정도면 감염자는 훨씬 많다는 얘기 아닌가.
“북한은 방역 시스템도 허술하고 약품도 부족해 한 번 뚫리면 걷잡을 수 없다. 무리죽음(집단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피해가 커지면 더 이상 숨기지 못할 것이다.”
  
나라 전체가 ‘자가격리’ 상태
 
북한도 코로나19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건 북한 매체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노동신문은 평남북과 강원도에서 7000명이 ‘의학적 감시 대상’이라고 전했다. 자가 격리와 수용 격리를 아우른 용어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1월 29일 ‘국가비상방역체계’로의 전환을 선포하면서 “국가 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정치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국경을 완전히 봉쇄했고 중요한 외화 수입원인 외국 관광객의 입국을 1월 22일부터 막았다.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의 송환마저 중단시켰다. 평양에 사는 외교관들도 예외 없이 공관 시설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격리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2일 연락이 닿은 대북소식통은 보다 더 구체적인 북한 내 상황을 전했다. 그는 “평양의 기관기업소(국영기업에 해당) 직원이 출퇴근을 못 하고 직장 안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로 주민들의 통행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다”며 “각급 학교의 방학을 연장한 뒤 주요 도시에선 학생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나라 전체가 ‘자가격리’상태인 것이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북한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상당한 수준으로 퍼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평양엔 마스크 대란 없나
 
북한 매체들도 주민들에게 마스크 착용 등의 행동 수칙을 반복적으로 전하고 있다. TV 화면에는 마스크를 끼고 외출 중인 평양 주민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북한에선 마스크 대란이 없을까. 간호사 출신의 탈북자 이수정(가명)씨에게 북한의 방역 체계에 대해 물었다. 그는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와 2015년 메르스를 막기 위한 방역활동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마스크 공급은 어떻게 이뤄지나.
“북한에는 각 도시 구역(구)별로 피복공장이 있는데 평소에는 여기서 학생 교복 등을 만든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옷 생산을 중단하고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전화 통화에서 들었다. 그런 제품은 천을 이용해 재봉틀로 만드는 것이다. 북한에서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 계층에 국한된 이야기다. 평양도 마찬가지다. TV 화면만 보고 생각하면 안 된다. 병원에선 중국제가 많고 더러 한국제도 있다. 대부분 주민들은 천마스크를 2중으로 끼고 다닌다. 그 수밖에 없다.”
 
방역활동이나 진단은 어떤 식으로 하나.
“의사·간호사에게 담당 지역이 정해지면 왕진 가방을 들고 직접 찾아간다. 체온과 혈압을 재는 정도인데, 이상이 발견되면 구역진료소(보건소)로 보내고 증상이 있는 사람은 격리된다. 격리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못하게 하는 차원이고 치료는 그 다음의 문제다. 장비도 약품도 모두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의심 환자를 떼어 놓는 수밖에 없다.”
  
“한국 지원은 안 받는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자가격리 모드에 들어간 북한이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2일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했다. 하루 전날 3·1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방역 협력’이란 이름의 지원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고선 백두혈통 김여정이 나서 “겁먹은 개”라며 원색적인 대남 비난에 나섰다. 하지만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지원을 요청한 정황이 여러 갈래로 포착된다.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대응팀장은 2일 “제네바에서 여러 차례 북한 대표부와 접촉했다”며 “북한에 진단키트나 장비 등을 보냈지만 여전히 대북 제재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 정부도 지난달 26일 “북한 측의 요청으로 평양에 진단키트 1500개를 기증했다”고 밝혔다.  
 
비영리기구인 ‘국경없는 의사회’는 고글, 소독약품, 청진기, 체온계 등 의료장비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 유엔 대북제재에 저촉되는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기도 했다. 결국 ‘방역 협력’이란 이름으로 지원하겠다는 한국 정부만 빼고, 국제기구나 우방국을 통해서 손을 이미 벌리고 있는 셈이다.
 
북·중 국경 소식통 "사스 때보다 더 엄중 봉쇄, 몇 달은 버틸 수 있어"
방역·의료가 허술한 북한으로선 국경 봉쇄란 극약처방 이외에는 달리 코로나19의 전파를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경 봉쇄는 또 다른 문제를 부른다. 중국 관광객을 통한 외화벌이의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중국으로부터의 각종 물자 수입 등 생명선이 위험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북한은 ‘셀프 봉쇄’ 상태를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북·중 국경 지역의 사정에 밝은 대북소식통과 연락이 닿았다.
 
국경 봉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2003년 사스(SARS·중증호흡기 증후군)이나 2014년 에볼라 유행 때도 있었다. 2014년에는 당시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까지 격리조치를 당했다.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었는데 고려항공 여객기가 평양으로 가지 않고 의주 비행장에 내렸다. 김 위원장은 그 길로 신의주 시내의 호텔에서 보름간 격리 생활을 한 뒤에야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현재의 봉쇄 상황을 이전과 비교하면.
“김정일 시대였던 과거 사례보다 이번 봉쇄가 훨씬 더 엄중하다. 실제로 중국 단둥(丹東)과 신의주를 잇는 철교는 통행이 완전 차단됐다. 과거 사스 때만 해도 사람의 통행은 차단했지만 화물차 통행은 막지 않았다. 당시 단둥의 한 식당에서는 북한 화물차 운전사들이 평양으로 가는 동안 먹기 위한 도시락이 하루 수십 개씩 팔렸다. 이번엔 싹 끊어졌다. 그런데 지난 주말 중국 쪽에서 20t 트럭 한 대가 화물을 싣고 건너간 뒤 중국인 운전사만 걸어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의 물자를 수송 받는 일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예상된다. 2014년에는 6개월 이상 봉쇄가 유지됐다. 이번에도 몇 달씩 버티며 국면 전환을 노리지 않을까.”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