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박한 부산 사투리, 자신의 영화보다는 부족한 병상 걱정을 더 하는 모습이 영화 속 잔정 많은 찬실(강말금·사진) 판박이었다. 영화의 주인공 찬실은 40대 영화 프로듀서. 오랫동안 함께 일한 유명 감독이 돌연사하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는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남자도 없고 일마저 끊긴 찬실인데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의지한다.
홍 감독 PD 출신의 실직 체험담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오늘 개봉
김 감독이 직접 각본을 써 지난해 부산영화제 한국감독조합상, KBS독립영화상, CGV아트하우스상 3관왕, 서울독립영화제에선 관객상을 받았다.
마지막 작품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홍 감독은 이 영화로 만난 배우 김민희와 스캔들, 부인과 이혼소송까지 휩싸였다. 김초희 감독은 영화사를 떠났고, 이후 프로듀서 일도 끊겼다.
“영화를 계속해야 하나, 반찬가게라도 해야 하나.” 41살에 찾아온 혼란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배우 윤여정의 제안으로 그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경상도 억양 지도 일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이번 영화의 구상이 떠올랐다. “캐릭터에 직업적 이력이 묻어난 것은 맞지만, 나머지는 만든 것”이라 설명했다.
“초고는 한 달 반 만에 썼어요. 이거 아니면 길이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나를 완성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큰 줄기는 지금과 비슷한데 자기연민이 정말 심한, 객관화가 전혀 안 된 시나리오였죠.”
1년 정도 고치며 자신을 빼닮은 찬실을 “객관화하려 노력했”단다. 편집을 다 끝내고야 “마치 다른 사람이 만든 것처럼” 영화를 보며 “찬실이는 정말 복이 많네…”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삶의 힘든 과정에서도 자신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복이다, 싶었다. 찬실이를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해준 사람들이 보였다.
“살면서 제가 흥했다, 망했다 한 적이 많거든요. 망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되게 많이 도와주면서 그 위기를 헤쳐 나왔더라고요. 그게 무의식 속에 각인돼 있었던 것 같아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순제작비 3억원이 채 안 되는 독립영화다. 장편으론 빠듯한 18회차 만에 촬영을 마무리해야 했지만, 그저 기뻤다. 스물셋에 처음 꿈꾼 영화감독을 비로소 이뤄서다.
영화를 연출하며 홍 감독 영향도 있었을까. “무의식 속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겠죠. 그분 영화 되게 열심히 만드시잖아요. 그런 부분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