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축구 족집게 쌤’ 조원희 “황의조 헤딩골은 내 작품”

중앙일보

입력 2020.03.05 00:02

수정 2020.03.0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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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들의 과외 선생님으로 변신한 프리미어리그 출신 조원희. 변선구 기자

조원희가 지난 1월 자신의 서울 청담동 축구센터에서 황의조(오른쪽)에게 근력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 2018년 은퇴한 그는 프로선수 사이에서 ‘축구 족집게 쌤’으로 통한다. [사진 조원희]

“맞춤식 축구 과외 전문 조 선생입니다.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축구 전 국가대표 조원희(37)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유명 대사로 자신을 소개했다. 2018년 은퇴한 그는 지난해 훈련센터를 열고 프로선수 전문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술을 제외한 피지컬, 기술 훈련 중심이다. 효과가 탁월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선수들 사이에서 ‘족집게 조 선생’으로 불린다. 3일 서울 청담동 축구센터에서 만난 그는 “꼭 시범을 보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보니, 운동량이 선수 때보다 많다”며 웃었다.

선수 시절부터 후배 지도에 적성
프로팀 코치 대신 훈련센터 열어
함께 훈련한 황의조 유럽서 펄펄

조원희는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다. 2002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2005년 수원 삼성으로 옮겼다. K리그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날린 그는 투지가 좋아 ‘조투소(조원희+가투소)’로 불렸다. 2009년 위건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 한 시즌 뛰었다. 이후 중국, 일본을 거쳐 수원으로 돌아와 은퇴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조원희는 “난 늘 동료가 빛나도록 돕는 조연이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공격수였지만, 프로에선 측면 수비수를 거쳐 미드필더로 전성기를 누렸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잉글랜드에선 활동량이 돋보여, 전방에서 득점보다는 패스를 내주는 변형 섀도 스트라이커를 맡기도 했다. 최고 조력자였던 그에게는 리더 기질이 있다. 그는 “플레이는 이타적이지만, 실력으로는 누구한테 밀린 적 없다. 팀 후배들이 찾아와 경기력 고민을 자주 털어놨는데, 원포인트 레슨을 자주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가르치는 건, 보람이 있다. ‘관종’(주목받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 기질이 다분한 데다 수다스러운 성격이다. 잘 맞았다. 지도자 매력에 빠진 것도 그때”라며 웃었다.
 
조원희는 은퇴 후 프로팀 지도자가 되는 건 잠시 미뤘다. 한 팀에서 제한된 선수만 만나기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선수와 소통하고 싶었다. 그는 훈련장을 열고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 선수까지 깊이 있게 연습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장비를 사들였다. 겨울 휴가 때면 운동할 데가 마땅치 않던 자신의 기억 때문이다.

국가대표들의 과외 선생님으로 변신한 프리미어리그 출신 조원희. 변선구 기자

 
조원희의 코칭 대표작 1호는 황의조(28·보르도)다. 1월 휴식 차 귀국한 황의조는 조원희를 찾아와 훈련을 청했다. 황의조는 친분이 없지만, 소문을 듣고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조원희는 “(황)의조가 지금보다 근력이 강해지면 유럽에서 더 잘 통할 거라고 판단했다. 나를 포함해 코치 4명이 붙어 하체 근력과 점프 전후 밸런스 유지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혼자 훈련해 슛도 실컷 할 수 있어 팀 훈련의 10배 효과였다”고 말했다. 매일 2시간씩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했다. 납 조끼(20㎏)를 입고 장애물을 거쳐 헤딩 후 슛하는 코스를 30세트씩 소화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 황의조는 소속팀 복귀 후 5경기에서 3골을 넣었다. 골문 앞에서 몸싸움을 이겨내고 모두 머리로 넣는 ‘헤딩기계’로 변신했다. 그 전까지는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감아 차는 게 특기였다. 조원희는 “헤딩골이 터지기 시작한 건 내 도움”이라고 자랑했다. K리그 레전드 데얀(40·대구FC)과 국가대표 김민우(30·수원), 이정협(29·부산 아이파크) 등 프로선수 30여명이 올겨울 그의 코칭을 받았다.

국가대표들의 과외 선생님으로 변신한 프리미어리그 출신 조원희. 변선구 기자

 
조원희는 2년 전부터 고려대 체육교육대학원에서 운동선수 심리를 공부하고 있다. 더 나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다. 그는 “언젠가는 프로팀 지도자가 될 텐데, 그때까지는 선수들과 호흡하면서 부족함 없이 준비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하루빨리 코로나19를 이겨내고 K리그가 개막해 데얀 형 등 나와 함께 훈련한 선수들이 펄펄 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