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휴대전화로 전해지는 프로축구 대구FC 미드필더 정승원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활달하지 않았다. 이날은 그의 23번째 생일이었는데, 벌써 10일째 대구 수성구 월드컵로에 위치한 ‘대구FC 클럽하우스’ 내에만 머물고 있었다.
외출 금지 중 생일 맞은 정승원
운동장~숙소만 구단 버스로 오가
지난해 9차례나 홈경기 매진
하루 빨리 상황 나아져 팬 만나길
대구는 지난달 중국 쿤밍에서 1차 전지훈련을 했다. 상하이 2차 훈련 직전 ‘우한 폐렴’(당시엔 코로나19를 그렇게 부름)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조기 귀국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 이렇게 될지, 그중에서도 대구가 이렇게 될지는 생각도 못 했다. 정승원은 “개막일에 컨디션을 100%로 맞췄는데 아쉽다. 그렇다고 훈련을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하던 대로 대구스타디움에서 매일 오전·오후 2시간씩 훈련한다”고 설명했다.
예기치 못한 감금 생활이 답답할 텐데. 어떻게 휴식시간을 보내나 묻자 “주장 (홍)정운이 형, (최)영은이 형, (김)대원이, (김)재우, (정)치인이 등 동료와 ‘도둑 잡기’ 게임을 한다. 주사위를 던져서 하는 보드게임”이라고 소개했다.
소녀 팬을 몰고 다니는 정승원의 별명은 ‘달구벌 아이돌’이다. 1월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당시 현지 여성 팬이 그를 보려고 먼 길을 달려오기도 했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이 오세훈(상주) 몸에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정승원은 한국의 우승과 올림픽 본선행에 크게 기여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경기 스타일은 거칠다. 맡은 선수를 악착같이 맨마킹한다. 정승원이 좋아하는 말은 ‘생긴 것과 다르게 공을 찬다’는 말이다. 그는 “고등학교가 남고(안동고)였고, 머리도 거의 삭발이었다. 매일 웃통 벗고 뒷산을 뛰었다. 프로 첫해부상을 당했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포기’다. 도쿄올림픽 엔트리는 18명. 섀도 스트라이커, 중앙 미드필더, 윙백까지 소화할 수 있는 그는 “김학범 감독님이 ‘미친 듯이 즐겁게 뛰라’고 했는데, 더 노력하고 발전하겠다”고 말했다.
정승원은 지난해 대구시 도시브랜드 홍보 모델로 발탁했다. 그가 나온 영상은 대구를 지나는 KTX에서 상영된다. 그는 영상에서 프리킥을 계속 실패하다가 마침내 성공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믿는 만큼 분명 달라질 겁니다. 대구처럼 당신도. 믿음에는 힘이 있다. 아이 빌리브 대구’라고 내레이션이 흐른다.
정승원은 “코로나 때문에 대구 시민이 아주 힘들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하다. 지난해 9차례나 홈경기가 매진될 만큼 고마운 대구 분들이다. 우리는 대구를 위해 뛴다. 하루빨리 상황이 나아지길 바란다. 올 시즌을 위해 빠른 역습을 펼치는 재미있는 축구를 준비했다. 세징야도 남았고, 데얀도 새로 왔다. 하루빨리 대구 팬 앞에서 축구 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와 대구가 함께하면 코로나를 이겨낼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