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현지시간), 홍상수(60) 감독의 스물네 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가 최초 공개된 독일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장. 홍 감독이 영어로 건넨 첫 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영화 제목의 도망친 여자는 결국 누구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냐”는 사회자의 첫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베를린영화제 회견 질문 쏟아져
김민희와 7번째 작품에 호평
“홍, 우디 앨런보다 체호프 견줄때”
제70회 베를린영화제(20일 개막) 경쟁 부문에 초청된 ‘도망친 여자’는 홍 감독과 연인인 배우 김민희(38)의 일곱 번째 작품. 남편이 출장 간 사이, 두 번의 약속과 한 번의 우연을 통해 세 친구를 만나게 되는 플로리스트 감희(김민희)를 따라가는 내용이다. 김민희·서영화·송선미·김새벽·권해효 등 홍상수 사단이 다시 뭉쳤다.
현지 반응은 우호적이다. 우선 영화제 측이 ‘도망친 여자’를 소개하며 “홍(상수)은 예술가로서 더 성숙했다. 에릭 로메르나 우디 앨런에 비교하지 말고, 안톤 체호프에 견줄 때”라고 평가했다. 스페인 매체 ‘EFE’는 “홍상수의 미니멀리즘이 베를린을 열광시켰다”고, 영국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섬세한 긴장감과 불편함에 관한 유머는 베를린에서 따뜻한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이날 홍 감독은 모든 질문에 느리지만 정확한 영어로 답했다. 영화의 출발점을 묻자, 그는 “구조나 내러티브의 완전한 아이디어 없이 촬영을 시작한다. 하고 싶은 몇 가지 소재에서 출발해 그다음에 오는 것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반응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본다”며 “첫 챕터에 서영화씨 아파트 장면을 사흘 동안 끝냈고 그때 내가 뭘 원하는지 대략 알게 됐다”고 했다.
한 독일 기자가 한국에 두 번 가봤다며 영화에 한국사회의 어떤 부분을 반영하려 했냐고 묻자, 홍 감독은 “한국사회뿐 아니라 어떤 것도 일반화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다”며 “난 늘 의도하고 제시하기보단 릴랙스하고 오픈된 상태에서 촬영하는 동안 내게 주어지는 것에 사로잡힌다. 삶은 어떤 종류의 일반화도 모두 뛰어넘는 것”이라고 했다.
김민희는 감독, 제작진과의 협업이 어땠냐는 질문에 “감독님이 써주는 대로 잘 외워서 전달하면 의미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 의도에서 너무 벗어나면 감독님이 잘 잡아주신다”고 했다. 홍 감독은 김민희가 외신 질문을 되묻자 부연 설명하기도 했다.
영화의 음악과 관련, 홍 감독은 “내가 작곡했는데 작은 기타와 피아노로 연주해 아이폰으로 녹음했다. 음질이 좋진 않지만 (영화에 들어가도) 그냥 괜찮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수상 결과는 폐막식 하루 전날인 29일(현지시간) 발표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