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인간혁명]기술발전이 대전염병 키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기술의 발전이 대전염병(판데믹·pandemic)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6세기의 흑사병 사례를 예로 듭니다. 당시 이 병은 황제의 이름을 따 ‘유스티니아누스병’으로 불렸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도시의 발생은 세균 입장에선 맘 놓고 증식할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말합니다.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대도시는 세균·바이러스의 훌륭한 먹잇감이 됐고, 교통의 발달은 이들이 멀리 퍼져나갈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 것이죠. 이처럼 개체 간 감염 자체는 자연현상이지만, 대전염병으로 번지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현상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컨테이전(2011)’입니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한 이 작품은 처음 최근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비슷한 소재를 다뤘습니다. 영화 초반에선 홍콩 출장을 다녀온 미국인 여성 베스(기네스 펠트로)는 며칠을 끙끙 앓다 발작을 일으키고 응급실로 옮긴지 얼마 안 돼 사망합니다. 곧이어 아들까지 잃게 된 남편 토마스(맷 데이먼)는 마지막 남은 가족인 딸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합니다.
환자들의 감염 경로를 추적한 끝에 최초의 감염자가 홍콩의 한 식당 주방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야생 박쥐의 변을 먹고 자란 돼지를 요리사가 맨 손으로 다루면서 전염이 시작된 것이었죠. 이번 코로나19의 감염원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박쥐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아주 사소한 사건 하나가 어떻게 전 인류를 위협에 빠뜨리는지 잘 보여줍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마치 지구를 정복한 것처럼 착각하는 인류가 눈에 보이지도 낳는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도 여지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 그리고 교통이 발달한 곳일수록 대전염병에 취약하다는 것이죠. 이번 코로나19가 발병한 중국의 우한시도 인구 1000만이 넘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2002년 말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스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것도 홍콩에서 감염자가 나온 뒤였습니다.
165년부터 180년까지 로마에서 발생한 ‘안토니우스 역병’은 동쪽의 파르티아와 전쟁 후 로마로 돌아온 병사들이 병균을 전파시켰습니다. 수백만 명의 로마시민이 죽었고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121-180)의 목숨까지 빼앗아갔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밀려드는 상인과 공직자, 순례자로 붐비던 고대 도시는 인류 문명의 산실인 동시에 병원균의 이상적 번식처였다”고 설명합니다. (『호모 데우스』)
어떤 전염병은 한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1529년 스페인 군대의 침략으로 멸망한 아즈텍은 전쟁보다 천연두로 사망한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2000만 명에 달했던 아즈텍 인구는 1618년 160만 명으로 급감했죠. 1531년 168명에 불과한 프란시스코 피사로(1475-1541)의 군대가 잉카제국의 8만 군대를 무너뜨린 것도 천연두 때문이었습니다. 전쟁보다 유럽인들이 퍼뜨린 전염병으로 훨씬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인체를 매개로 전염되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마존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밀림인 콩고분지(362만㎢)를 넘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안에 치사율이 최대 90%라는 점도 확산이 더딘 이유였습니다. 리 골드먼 미국 컬럼비아대학병원장은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소멸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오히려 전염이 어렵다”고 합니다. (『진화의 배신』)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숙주의 생명에는 큰 지장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무증상 상태에서도 감염을 시키는 바이러스는 대전염병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는 “인간의 면역체계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분자구조를 변화시켜 생존을 이어나가는데, 이는 진화의 한 방식”입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미국의 의학 저널리스트 소니아 샤는 “지난 50년 간 300종 이상의 감염병이 예전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지역에서 새롭게 출현했고 다음 두 세대 안에 인류에 치명적인 판데믹 바이러스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판데믹: 바이러스의 위협』
아직까지는 바이러스가 인간을 전염시키는지, 나아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3만년의 시간이동을 한 바이러스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에게 전염되기 시작한다면 엄청난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몰살된 아즈텍과 잉카처럼 인간은 면역이 없는 항원에 취약하기 때문이죠.
인간은 생태계에서 유일하게 천적이 없는 종입니다. 기원전 1억 명에 불과했던 인류는 3년 후면 80억 명을 돌파합니다. 자연은 늘 생태계의 위협이 되는 종에겐 천적을 만들어 균형을 맞춰 왔죠. 현재 인류의 가장 큰 천적은 바이러스가 그 자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판데믹에 대비해야 할 것은 비단 백신뿐일까요?
윤석만 사회에디터 겸 논설위원 sam@joongang.co.kr
#유튜브에서도 인간혁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pp-I9olmN4
윤석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