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대구 동성로···"빨리 서울 올라와라" 부모는 애가 탔다

중앙일보

입력 2020.02.21 05:00

수정 2020.02.2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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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20일 오후 대구의 중심으로 불리며 밤낮없이 사람들로 붐비던 중구 동성로 거리가 한산하다. [뉴스1]

대구·경북지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20일 현재 70여명으로 늘어나자 대구를 떠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구 도심은 물론 공공기관과 시장을 찾는 이들이 급감하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자아내고 있다.  
 
경북 경산에 있는 한 대학교 약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종호(32)씨는 개학을 앞두고 부모님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 사는 부모님은 “대구·경북 전역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퍼져 위험하다”며 “어서 빨리 서울로 올라오라”고 김씨를 독촉했다. 이미 개강이 2주 정도 미뤄진 상황에서 김씨는 앞으로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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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시지동에 사는 황모(40·여)씨는 20일 오전 서울로 떠났다. 황씨는 “대구에 있으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 오피스텔을 얻어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설 연휴부터 친정이 있는 대구에 머무르고 있는 윤모(33·여)씨는 20일 친정을 떠났다. 윤씨는 “다른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는 남편이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연락이 왔다”며 “친정 부모님도 대구를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권유해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구에 아내와 딸을 두고 혼자 서울에 장기 출장 중인 구모(38)씨는 가족을 서울로 데려오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사택에서 생활 중인 구씨는 “신종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서울에 오피스텔을 구해서 가족과 함께 지낼 예정”이라며 “면역력이 약한 4세 딸이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시민 송모(35)씨는 아내와 두 자녀를 경남 김해에 있는 친정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아내가 따르지 않아 속이 상한다고 했다. 송씨는 “아내더러 친정에 가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아 속상하다”며 “자녀 때문에라도 아내를 설득시켜 친정으로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가 하룻밤 사이 또다시 무더기로 발생한 가운데 20일 대구 번화가인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이 한산한 모습이다. [뉴스1]

대구를 떠나지 못한 이들은 외출을 자제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는 이틀째 텅텅 빈 모습이었다. 20일 오후 1시 동성로는 한산했다. 동성로 태왕스파크 인근에서 음식점을 하는 김모(41)씨는 “평상시에는 점심을 먹으려는 손님들로 대기 줄이 있었는데 오늘은 3테이블뿐”이라며 “19일부터 손님이 뚝 끊겨서 오늘(20일)은 아르바이트에 출근을 하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당분간 이어질 텐데 2월 장사는 완전히 망쳤다”고 토로했다.  


대구 동성로에 위치한 동아백화점 지하 1층 이벤트 매장은 썰렁한 모습이었다. 동아백화점 관계자는 “어제 오전부터 손님이 거의 찾지 않는다”며 “평상시와 비교해 매출이 40%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현대백화점 대구점은 20일 오후 6시 40분부터 임시 휴점에 들어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지난 15일 신종 코로나 33번 확진자가 현대백화점 대구점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며 “질병관리본부 지침에 따라 방역과 점검을 위해 임시 휴점한다”고 말했다. 

대구 경북 지역에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자 추가 감염을 우려해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20일 대구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 내 승객이 한 명도 없다. [사진 독자]

동대구역과 대구역 등 철도역에는 철도와 구내 매장 이용객이 감소했다. 역 구내 한 식당 업주는 “코로나19 확진자 무더기 발생 소식이 전해지면서 어제, 오늘 매출이 뚝 떨어졌다”며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지 한숨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도시철도 이용객도 감소해 객차 내부는 하루종일 한산한 모습이었다. 
 
시민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함에 따라 20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대구시립도서관 9곳이 전면 휴관에 들어갔다. 대구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이 커지고 이용객도 줄어 휴관을 결정했다”며 “사태 추이에 따라 휴관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대구 농수산도매시장은 20일 오후 방역작업을 위해 농수산물을 모두 빼냈다. 1988년 시장이 생긴 후 32년 만에 처음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물건을 모두 빼낸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연합뉴스]

사람이 몰리는 대형마트나 시장 방문 등을 꺼리면서 온라인 구매가 급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쿠팡의 경우 대구·경북 지역 주문량이 폭증하면서 일부 제품이 품절되기도 했다. 하루 약 180만건이던 로켓배송이 신종 코로나가 확산한 뒤 330만건까지 치솟았다. 쿠팡은 20일부터 비상 체제에 들어갔지만, 대구·경북 지역에 배송 지연과 품절 사태는 여전하다.  
 
대구=이은지·김정석·백경서 기자 lee.eunji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