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4관왕의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곽신애(52)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가 털어놓은 ‘감 잡은 순간’이다. 지난달 초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서 시작된 ‘오스카 여정’은 지난 9일(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오스카)에서 “모든 면에서 역사를 뒤집거나 만드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봉준호 감독과 작품을 함께 한 곽 대표도 아시아 여성 프로듀서로는 첫 작품상 이라는 ‘역사’를 남겼다.
오스카 작품상 ‘기생충’ 공동 프로듀서
"감독상 탈 때부터 작품상 예감했다
할리우드 아시아인들에 큰 힘된 듯"
독립과 주류 경계 감독들 지원 계속
“체감하기론 우리가 1등이었지만 상을 준다는 건 만드는 사람들에게 파워를 주는 건데 그걸 할까 했다. 우리가 투표로 작품상을 받는다면 아시아권, 넓게는 비영어 영화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건데, 세계 영화에 의미 있는 자극이 될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런 점에서 그들(아카데미 회원들)이 변화를 선택한 건 용기다. 그런 면에서 ‘리스펙트(respect)’를 바치고 싶다.”
논란이 된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의 수상 소감에 대해선 다시금 “나와 봉 감독이 동의했던 결정”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미경 부회장은 CJ실무진을 대표할 수 있는 분이고 내가 키노 있을 때 CGV가 만들어지는 것을 다 지켜봤다. 영화란 것을 같이 꿈꿔온 분이고 우리 영화를 사랑하는 걸 알기 때문에, 행여나 작품상 타게 되면 저, 봉 감독, 이미경 부회장 순서로 정했다. 그런데 봉 감독님은 이미 많은 수상 소감을 말한터라 마이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소감 내용을 미리 알았던 건 아닌데, (여론이) 너무 시끄러워져서 당황하긴 했다.”
오빠 곽경택 감독과 남편 정지우 감독은 칸 황금종려상 때와 마찬가지로 ‘극과 극’ 반응을 보인단다. “오빠는 ‘받을만 하니까 받은 거지. 니가 이 업계에서 묵묵히 30년 버텨서 받는 거다’ 이러면서 막 띄워주는 편이고 남편은 별일 없던 것처럼 ‘허허, 하하’ 그러고 끝이다. 사실 영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예산과 일정에 맞춰 원하는 배우 캐스팅되는 게 기쁜 일이지 상 타는 게 상금이 50억쯤 되는 것도 아니니까(웃음). 사실 제작자로선 봉 감독님이 ‘이번 영화에서 가장 편하게 일했다, 후회가 없다’고 한 게 최고의 칭찬이었다.”
봉 감독과 차기작에 관해선 구체적으로 얘기나눈 바 없다면서 ‘썸’에 비유했다. “썸 타거나 연애할 때. 나랑 계속 사귈 건가 보네. 서로 그러는 단계랄까. 감독님이 차기작 중에 외국영화 제작사는 따로 있고 한국영화를 우리와 하게 됐으면 좋겠다 기대한다.”
“영화를 오락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예술로 인식하는 매체”였던 ‘키노’ 출신 곽 대표는 홍보 및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상업 포인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청년필름’ ‘신씨네’ 등을 거쳐 2010년부터 바른손에서 일하다 2013년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에 선임됐다. 영화 제작을 하면 할수록 “독립과 주류 경계에 있는, 자기 색깔이 선명하지만 상업적으로 만만하진 않은” 감독들의 작품을 밀어주는 데 포인트를 두게 됐다고.
“예컨대 ‘극한직업’ 같은 영화를 좋아하긴 해도 나는 못 만드는 영화다. 오빠 영화 ‘친구’를 보면서도 나는 못 만들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제작자로 참여해 좋아질 작품과 마이너스가 날 작품을 구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오래 가고 싶은 분이 (제작자 데뷔작이었던)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이다. 그런 분들이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궁핍하지 않게 살아서 흥행이 될 수 있게 하는 게 내 일이다.”
여성제작자로서 첫 오스카 참석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단다. 당장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몰라서 인터넷을 찾아보고 결국 ‘기생충’ 의상감독의 힘을 빌려 맵시를 냈다. 아쉬운 기억도 있다. “(할리우드 원로배우) 제인 폰다가 상을 줬는데 그런 해외 무대 경험이 없다보니 의례적인 볼 키스나 포옹도 안 하고 상만 받고 말았다. ‘멋진 여성인 당신을 존경한다’ 멘트 하나 못 한 게 미안하다.”
영화제작자로서, 감독의 아내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힘에 부쳐 영화업을 그만두려고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다른 데 가면 신입인데다 성취를 다 까먹게 되니” 고쳐먹고 바른손에 입사한 게 오늘로 이어졌다. “30년 가까이 영화와의 관계에서 화답 받은 적은 없었다. 실제로 또래 여자 제작자들의 필모그래피가 더 좋은데, 그분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신다. 다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한 영역에서 고비 겪으면서 안 퍼지고 산 것에 대해 하늘이 몰아서 (상) 주는 것 같다고 하니 감동이고 고맙다.”
극장통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 18일까지 ‘기생충’은 북미에서 4499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1억9783만 달러(약 2370억원) 티켓 매출을 올렸다. 순제작비 135억원의 17배가 넘는 매출이다. 오스카 4관왕에 따른 후광도 확실하다. 첫 주말인 14일부터 사흘간 550만 달러(약 65억원)의 티켓 판매 수입을 거둬 전 주말에 비해 234% 늘었다. 포브스는 앞서 “기생충이 최근 40년 간 ‘글래디에이터’(2000) ‘마지막 황제’(1986)에 이어 역대 3위의 ‘작품상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른손이앤에이(바른손필름 포함)의 9번째 작품인 ‘기생충’ 효과로 코스닥 주가도 오스카 수상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나흘 연속 20%대 상승세를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