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가 노욕의 대명사처럼 돼 버렸는데, 많이 아프고 쓸쓸하고 그렇습니다. ‘기·승·전·손학규 퇴진’을 마주하는 내 마음이 어떻겠어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1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통합 논의가 진행중인 바른미래당·대안신당·민주평화당 등 3당에서 자신을 향해 퇴진 요구를 쏟아내는 것에 대해 ‘아프다’고 표현했다.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마저 자신에게 등을 돌린 상황을 알면서도 차마 대표직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다.
손 대표는 그 이유를 묻자 “중도 통합을 바탕으로 한 정치 구조 개혁과 세대 교체가 절실하다. 그게 내가 정치 인생 마지막으로 신명을 바쳐 해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지금의 구조로는 3당 통합이 성사된다 해도 ‘도로 호남당’이 될 것이란 우려였다. 손 대표는 “3당이 통합해 호남당이 될 경우 이번 총선에서 의석 몇 석을 챙기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게 한국 정치에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되겠냐”며 “중도층을 모으고 젊은 청년들을 앞세워 중도 정당으로 거듭난다면 총선에서 50~60석까지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당 안팎에서 퇴진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 과거 유승민·하태경·이준석 의원과 싸울 때만 해도 주변에서 ‘어려울텐데 어떻게 얼굴이 그렇게 좋냐’고 물으면 “이제 더는 썩을 속도 없어요”하고 웃어 넘겼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이 많이 아픈게 사실이다.
- 원내대표와 비서실장 등 많은 측근들도 곁을 떠났다.
- 이찬열 의원과 함께 김관영 의원 상가집을 가는데 대뜸 “대표님, 저 탈당할 거예요"라고 하더라. 국회의원이 내 살 길 찾아 나가는 건 아무도 못 막는다. 씁쓸하다. 뭐라고 더 표현을 하겠나.(※손 대표의 오랜 측근이던 이 의원은 지난 4일 탈당 선언과 함께 자유한국당 행을 택했다)
- 대표직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 박지원 평화당 의원 같은 경우 통합 후 총선 끝나면 민주당이랑 합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다. 마음이 정말 착잡하다. 사람들은 뭐 더 먹을 게 있어서 대표직 붙들고 온갖 수모를 겪고 있냐고 하겠지만 이번 총선에서 세대교체 바람을 안고 정치 구조를 개혁하는 것, 그건 포기할 수 없다.
- 3당 통합이 결국 ‘도로 호남당’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가
“오신환 사무총장 임명하면서 안철수와 틀어져”
- 지난달 27일 안철수 전 대표와의 회동에선 무슨 얘기를 나눴나.
- 안 전 대표에게 독일로 가라고 제안한 것도 나고, 해외 나가 있을 때도 언제든 만나자고 했다. 귀국 후 나를 찾아온 안 전 대표는 당 지도체제 개편과 함께 비상대책위 얘기를 했다. 그러면 비대위원장을 누구를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저한테 맡겨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라. “이 말씀 드리러 왔다”고 하고는 일어났다. 어이가 없었다.
- 안철수 전 대표가 돌아오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나.
- 당에 돌아와 선거를 지휘하면 우리 지지율도 올라가고 안철수도 살고, 그리고 그간 당을 지켜왔던 당직자들도 모두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안철수는 “당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새로운 당을 만든다”는 계획을 이미 다 세워둔 것 같았다.
- 사퇴 시한을 2월 말로 못박았다. 남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하려 하나.
- 이번 총선의 두 가지 과제는 첫째 다당제로 향하는 정치 구조 개혁이고 두 번째는 세대 교체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구태 정치, 옛날 정치인으로서는 감당하지 못한다. 미래 세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만 마친 뒤 나는 다 내려놓을 예정이다.
퇴진 압박, 도미노 탈당까지
다만 당 내부에선 손 대표가 ‘2월 말 퇴진’ 입장을 번복할 수 없도록 당헌 부칙에 관련 내용을 못박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 박주선 대통합개혁위원장은 “(손 대표가) 그간 조건부로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가 입장을 번복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손 대표의 2월말 퇴진을 당헌에 명문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인터뷰에서 “아무리 정당이 권력 투쟁이라고 하지만 그런 걸 당헌의 부칙으로 박는 이런 정치가 어디 있어요”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