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봉준호가 넘은 언어장벽, 최경주도

중앙일보

입력 2020.02.13 11:15

수정 2020.02.1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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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바이스캡틴으로 활약한 최경주. KPGA 제공

스포츠기자를 하면서 만나 본 선수 중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셋을 꼽으라면 최경주, 서장훈, 이영표다. 그중 최경주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기자를 하다 보면 우문에도 현답을 해주는 선수가 매우 멋진데 최경주가 그랬다. 한 번 질문하면 기삿거리가 막 쏟아졌다.  

 
말도 재미있게 했다. “바다에 가서 물을 막고, 김발을 만들고, 키워서, 빻고, 갈아서, 물에 타서, 모양 떠서, 물을 빼서, 널어서, 가지고 와서, 벗겨서, 접어서, 잘라서, 포장해서 수협에 가야 한다. 건조대에 몇천 장의 김이 널린다. 산더미 같다. 보는 순간 겁을 먹는다. 언제 다하나 싶어 한 마디씩 불평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사람들은 눈이 제일 게으르다. 그 불평 할 동안 벌써 열 개는 했겠다’라고 말씀하셨다.”
 
2021년 프레지던츠컵을 지휘할 캡틴을 곧 선발한다. 2019년 캡틴을 맡았던 어니 엘스(남아공)가 사임해서다. 호주에서 열린 2019년 대회 역전패 충격이 큰 듯하다.  
 
차기 후보로는 2019년 대회 바이스 캡틴 중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주와 마이크 위어(캐나다), 트레버 이멜만(남아공), 제프 오길비(호주)다. 마이크 위어는 제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국인 캐나다에서 열리는 차차기 대회 캡틴으로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트레버 이멜만은 그린재킷이 있지만, PGA 투어 2승에 불과하고 선수생활이 길지 않았다. 나이가 너무 젊다. 1979년생으로 이제 41세다. 프레지던츠컵 캡틴은 50세 전후에 하는 것이 관례다.
 
제프 오길비는 메이저 1승 포함 PGA 투어 8승을 기록했다. 똑똑하고 성격도 좋아 선수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43세로 나이가 어린 감이 있다.
 
최경주는 프레지던츠컵에 3번 선수로 참가했고 2번 바이스 캡틴으로 나갔다. 4명 중 가장 경험이 많다. 제5의 메이저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포함해 PGA 투어 8승을 했다.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한 메모리얼,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AT&T 내셔널에서도 우승했다. 미국에서도 팬들과 선수들이 그를 좋아한다. 나이도 딱 적당하다.

최경주가 지난해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한국의 안병훈, 임성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KPGA 제공

그런데도 최경주가 캡틴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언어 장벽 때문이다. 캡틴은 각종 행사에 참여해 연설해야 하고, 선수들과 세밀한 작전을 협의해야 한다. 골프는 미국과 영국 중심이어서 모국어로 영어를 하지 않은 사람은 중요한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어로 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쓴 걸 보면 이제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경주처럼 말을 재미있게 하는 선수가 언어 장벽 때문에 그 진가를 보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봉준호를 돋보이게 한 샤론 최처럼 뛰어난 통역사와 함께한다면 어감까지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로 된 영화만 작품상을 타던 아카데미의 전통은 봉준호 감독에 의해 깨졌다. 영어 사용국에서만 캡틴을 하던 프레지던츠컵 관례를 깨는 주인공은 최경주였으면 좋겠다. 그가 딱 적임자다.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