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고령 인력 활용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몇 가지 중대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생산성 향상과 임금구조 개편이다. 연공에 따라 급여가 오르는 호봉제 기반에서는 기업이 생산성 향상 없는 정년 연장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 지금은 연공급이 뿌리 깊었던 일본에서도 종신고용 신화가 무너져 직무와 성과에 따른 봉급체계가 확산하는 시대다. 예컨대 도요타는 이미 2004년 호봉제를 폐지했다. 그러고도 노사분규 ‘제로(0)’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노동개혁이 정년 연장의 길을 열었다.
노동 개혁 없이는 공무원과 양대 노조만 혜택
직무·성과에 따른 임금체계 갖춰야 도입 가능
여기서 정년을 ‘60+α’로 단숨에 늘리면 청년 고용은 더 어려워진다. 정부가 지난해 9월 기업에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다 중단한 것도 이런 우려가 컸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기업이 받아들일 여력도 없는데 무조건 추진하면 부작용만 심해진다. 더구나 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GM 군산공장이나 조선사 직원처럼 고용 연장은 그림의 떡이 된다.
결국 고용 연장은 대기업·금융권·공기업을 포함한 200만 양대 노총 소속 근로자와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공무원의 철밥통만 강화할 공산이 크다. 기업은 기업대로 신규 고용을 줄이고 나설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면 노동개혁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선행돼야 한다. 이 조건이 충족돼야 기업은 비로소 재고용·정년 연장·정년 폐지 등을 형편에 맞춰 선택하면서 고용 연장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586세대의 청년 착취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 활력을 죽이고 청년의 미래를 희생시키는 ‘나쁜 고용 연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