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은 직후, 전화기 넘어 들리는 84세 노감독의 목소리는 떨렸다. 2002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은 임권택 감독이다.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한 그였지만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임 감독은 이날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부인 채령 여사와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 TV 중계를 지켜봤다. 다음은 임 감독이 전한 소감 요약.
84세 국민감독도 ‘기생충 수상’ 축하
‘감독상 봉준호’ 불릴 땐 가슴 전율
3시간 넘게 TV 지켜본 건 생애 처음
예상못한 큰 선물, 한국 영화 잔칫날
감독상 수상자 봉투를 쥔 스파이크 리 감독이 “봉준호”라고 호명하는 순간 가슴에서 전율이 일었다. 한국 영화가 드디어 아카데미 시상식에 서는 것을 보니 그동안 영화를 만들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내 일처럼 감개무량했다. 그 문을 열려고 그동안 얼마나 노력을 했었나.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옆에서 보던 아내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봉 감독의 수상 소감을 들을 땐 2002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에 호명됐을 때 쉴 새 없이 터진 카메라 플래시와 이후 쏟아진 취재진의 질문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봉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다가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쥐었으니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봉 감독에게 전화했다. 다른 감독의 작품을 보고 감독에게 전화해 “좋았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날만큼은 정말 칭찬을 많이 했다. 빈틈이 없고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봉 감독을 각종 영화제에서 가끔 보긴 했지만 내가 따로 만난 적은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영화에 대한 느낌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
여기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거머쥐었다는 것은 한국 영화에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제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한국사회에 대한 특별한 이해력이 없이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는 20대에 영화계에 들어와 평생을 걸고 지금까지 종사하면서 내 인생 전체를 영화에 담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한국 영화가 이제 세계 어느 나라 영화와 비교해도 지지 않는 정상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 아닌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쁜 일이다. 다시 한번 축하와 감사를 전한다. 봉준호 감독이 정말 큰 일을 했다. 그가 사는 한국에서 같이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정리=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