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지난달 24일 인민일보를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후베이(湖北)성의 성도인 인구 1100만 명의 우한(武漢)에 신중국 건국 이후 최초의 도시 봉쇄령이 내려진 게 23일이었다.
우한이 봉쇄된 다음날 인민일보 1면엔 관련 소식 없어
4면에 공항과 기차역 교통 잠시 폐쇄 등으로 단신 처리
대신 시진핑 주석의 춘절 인사 연설이 머리기사로 올라
시 주석 띄우기 톱 기사가 방역 보도보다 많은 게 현실
시 주석의 커다란 단독 사진과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을 부각한 단체 사진 등 두 장의 사진이 나란히 실린 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시 주석의 담화 내용 등만 소개됐다.
1100만 우한 시민이 고립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와의 생사를 건 싸움에 들어갔는데 중국 지도부의 사태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신종 코로나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특히 사망자가 300명을 돌파하며 세계 각국의 이목이 쏠린 지난 1일엔 이론지 ‘구시(求是)’ 최신호에 실렸다는 시 주석의 말씀이 게재됐는데 그 내용을 보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하는 아연함을 느꼈다.
시 주석이 우리에겐 막고굴(莫高窟)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둔황(敦煌)의 연구원 좌담회에 참석해 둔황에 대한 문화 연구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도움이 되게끔 하라는 게 주요 골자다.
인민의 신문인 인민일보에서 인민보다 총서기에 대한 보도를 더 중시하면서 생긴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나. 시 주석의 권력이 ‘1인 체제’라는 말을 낳을 만큼 강고해지자 오로지 권력자의 눈치만 보는 ‘과잉 충성’이 나은 비극이라 보인다.
중국 언론은 당 선전부가 관장한다. 한데 시진핑 띄우기와 관련해 중국 선전부가 경계하는 게 두 가지 있다. 고급흑(高級黑)과 저급홍(低級紅)이 그것이다. 저급홍은 시 주석을 찬양하려 하는데 그 방법이 투박해 오히려 반감을 사는 경우다.
한데 시진핑 집권 2기 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게 고급흑으로 불리는 선전이다. 세련되게 시 주석의 인간적 풍모를 띄우고 정책을 홍보하는 것 같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다.
2017년 11월 구이저우성의첸시난(黔西南)일보가 과거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선전 수법을 따 시진핑의 거대한 사진을 신문에 내걸고 ‘위대한 영수’ 운운한 게 고급흑 선전의 대표적인 예로 지적됐다.
신종 코로나에 맞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방호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고 있는데 시 주석은 둔황 연구원 좌담회에 참석해 중화문명 5000년을 운운하고 있는 게 중국 인민에 과연 어떻게 비칠까.
시급한 건 엄청난 사망자를 내는 우한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투명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지도자 띄우기는 나중이다. 한데 바이러스 퇴치보다 지도자 안색 살피기에 급급하다면 이번 역병과의 싸움은 보다 많은 시간과 희생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