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난해 9월 30대 초스피드 입각이 오히려 독이 됐다. 입각은 본인이 원했지만, 그 다음은 시련이었다. ‘인기’가 아닌 ‘실적’이 중요해졌고, 본격적인 검증의 칼을 마주하게 됐다. 동화 속 왕자님을 대하듯 했던 세상의 눈은 훨씬 엄격해졌다.
그는 입각 전엔 ‘차기 총리 후보’ 조사에서 1위를 휩쓸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지난해 8월 조사에서 29%, 9월 20%로 1위였다. 하지만 11월 18%, 12월 17%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에게 밀리더니, 지난달엔 11%로 폭락하며 3위로 떨어졌다. ‘각료 최초의 육아휴직 선언’ 등 단발성 이슈로 화제를 뿌렸지만 업무적 존재감은 미미했다. 총각 시절 유부녀와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보도 등 사생활 추문이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이즈미를 탐탁지 않게 여긴 아베 총리가 골탕을 먹이려고 아무 준비도 안 된 그를 빨리 입각시킨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된다. 고이즈미에 대해선 “언제 나서고, 언제 빠져야 하는지 모른다” “실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려야 할 때 분위기에 휩쓸려 제 무덤을 팠다”는 핀잔이 나온다.
한국에선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총선 출마와 정계복귀가 큰 관심사라고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먹은 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말해놓고 출마설이 도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바람이 그를 흔드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일부러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부화뇌동하다 본전도 못 건지고 있는 신지로의 사례가 임 전 실장의 최종 판단에 도움이 됐으면 싶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