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5번 ‘운명’은 베토벤이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는 믿을 수 없는 회고에 따라 붙은 제목이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는 작품의 의미를 묻는 비서(‘운명’을 기억한 동일인물인 안톤 쉰들러)에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라”고 했다는 이유로 이름이 지어졌다. 베토벤 성격에 대한 여러 증언과 자료로 미뤄봤을 때 이 말은 귀찮은 질문에 대한 성의 없는 답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피아노 소나타 ‘열정’, 피아노 협주곡 ‘황제’, 3중주곡 ‘유령’도 마찬가지다. 현악4중주 ‘하프’, 바이올린 소나타 ‘봄’(곧 봄이 되면 라디오에서 줄기차게 나올!)도 그렇다. 출판업자는 흥행을 고려하고 연주자에게 친숙하기 위해, 음악학자는 대중의 이해를 위해 각종 이름을 지어 붙였다. 베토벤은 궁정과 교회에서 독립한 최초의 음악가로 알려져있지만 후원관계와 시장논리에서까지 자유롭진 못했다.
게다가 베토벤의 청각 장애에 대해 그간 수많은 위인전은 필요 이상으로 ‘초인적 역경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베토벤의 청력 이상은 그가 피아니스트와 작곡가의 길에서 일찌감치 후자를 선택하게 한 결정적 ‘도움’이기도 했다. 또 머릿속에서 흘러다닌 음악은 귀로 듣는 음악보다 전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청각 장애는 음악의 시대 흐름을 얼마간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종합해보면, 현대의 청중이 잘못 적힌 프로그램 노트를 보며 지나친 감상에 젖을 이유가 없다.
성악곡을 제외하면 베토벤이 직접 제목을 붙인 곡은 둘이다. 교향곡 6번 ‘전원’과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이다. 베토벤은 음악 자체가 스스로 완결성을 가지는 이상을 품었다. 이미 많고 잘못된 정보는 베토벤의 250주년을 맞아 더욱 많고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 이 시대의 청중이 확신해도 되는 건 음악과 소리뿐일지 모른다. 부디 우리 모두가 올 한 해 잘 듣고 스스로 판단하길 소망해본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