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등장한 위장약 겔포스는 지난 45년간 가장 친숙한 응급약이었다. 갑자기 속이 쓰리거나 산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 때 급히 하나 짜 먹는 국산 약 중 맏이다. 85년 나온 알마겔(유한양행)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복용 되는 위장약이기도 하다.
[한국의 장수 브랜드] 24. 겔포스
알고 보면 뿌리는 프랑스
그중에서도 김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현탁액(미세한 입자가 물에 섞인 것) 형태의 위장약이었다. 알약이나 가루약이 전부였던 한국에서도 이런 약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귀국한 뒤 바로 연구부서를 신설하고 새로운 약 개발에 몰두했다. 72년 3월, 이제는 사라진 프랑스 제약사 비오테락스(Biotherax)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이후 3년만인 75년 6월 나온 제품이 겔포스다
겔포스는 현탁액을 뜻하는 ‘겔(Gel)’과 제산 효과를 뜻하는 포스(Force)가 합쳐진 이름이다. 두 가지 겔이 상호작용과 보완을 통한 피복작용으로 위벽이 위산이나 펩신(소화효소)에 손상되는 것을 보호한다. 궤양 발생을 예방하고 상처 부
위를 보호하는 효능이 있다. 너무 많이 분비된 위산을 잡기에 그만이다
‘수사반장’ 인기 업고 “위장병 잡혔어”
출시 직후엔 외면을 받았다. 물약, 가루약, 알약에 익숙했던 한국 소비자에게 걸쭉한 약은 너무 생소했다. 첫해 성적은 6000만원에 그쳤다.
근거가 희박하지만, 어쨌든 겔포스는 술자리 전 필수품이 됐다. 보령제약은 안양에 겔포스 전용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단일 제약공장으로는 당시로써는 최대였던 6611㎡(2000평) 시설을 마련했다. 79년이 되자 매출은 10억원을 찍었다.
‘위장약=겔포스’라는 공식이 굳어진 것은 드라마 ‘수사반장’의 공이 크다. 80년대 중후반에는 ‘수사반장’ 속 형사들이 “위장약 잡혔어”를 외치며 인지도를 높였다. ‘속쓰림엔 역시 겔포스’라는 카피도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겔포스 광고 캠페인 중 가장 화제가 됐던 광고는 80년대 초 철모와 나비를 매치한 ‘위장에 평화를…’이다.
80년대 당시 이 광고를 내보내자마자 보안사에서 연락이 왔다. 국방법에 군장비를 매개로 한 광고는 못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군인이 죽어서 패전했다는 의미로 보인다는 것이 보안사의 이유였다. 제휴사인 비오테락스는 광고 시안을 보고 찬사를 보냈지만, 엄혹했던 시대 분위기 따라 캠페인은 단 하루 만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광고사에 남았다.
겔포스의 변신
이 때문에 성분과 디자인에 계속 변화를 주고 있다. 지난 20015년엔 발매 40주년을 맞아 포장을 모던한 노란색 디자인으로 바꾸고 복용하기 좋도록 입이 닿는 부분을 뾰족하게 튀어나도록 개선했다.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자마자(1992) 수출을 시작했다. 중국에선 한국과 달리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되면서 한동안 고전했다. 하지만 2004년 연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는 약 600억원을 기록했다. 중국에 가장 많이 수출되고 있는 한국 약품(현지 생산 국내 제약사 제품 제외)이기도 하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