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귀화한 남자 프로농구 KCC 라건아(31)는 1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난 한국인들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매일 받는다”며 내용을 공개했다. 충격적이었다.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 ‘검둥이’, ‘너의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 등 끔찍한 메시지였다.
라건아·박지수 등 SNS 피해 대책
고소 등 법적대응해도 소액벌금
KBL 등 피해수집과 대응 준비 중
관련 법 마련, 강력 제재 목소리
법률사무소 로진의 길기범 대표변호사는 “사이버 명예훼손죄는 7년 이하 징역 등 무거운 처벌이 따른다. 하지만 DM을 통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경우 처벌이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사실 적시가 없는 경멸적 감정의 표현에 불과하고, 공연성(불특정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이 인정되지 않아 사이버 명예훼손죄나 형법상의 명예훼손죄, 모욕죄 등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기장에서 직접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거나, 기사나 소셜미디어에 댓글을 남기는 경우는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 길 변호사는 “이 경우 민사상으로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으나, 인정되는 위자료는 소액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DM은 댓글과 달리 당사자만 볼 수 있어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간 여러 연예인이 악성 댓글 등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스포츠 선수의 경우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지속적이고 반복되는 공격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자배구 김연경(32)은 최근 유튜브를 통해 “국가대항전에서 우리가 이기면 ‘경기는 이겼지만, 미모에서 패배’란 댓글이 달린다. 선수들 얼굴을 비하하고, 성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다. 그런 이야기는 들을 필요가 없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더 의지하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비난에 대처하는 자세를 공개했다.
현재 국내법에선 가해자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서도 처벌 수위가 높지 않다. 그뿐 아니라 각 종목단체에 관련 규정도 거의 없다. 프로농구(KBL, 한국농구연맹)는 인종차별 발언을 한 선수나 감독은 징계할 수 있지만, 팬에 대한 규정은 미흡하다.
KBL 관계자는 “인권 보호를 위해 10개 팀 선수를 대상으로 29일까지 인종차별 피해 사례를 수집했다. 이후 법적 대응을 하겠다. 차별 금지 캠페인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은 2017년 인터넷 커뮤니티에 여자 선수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사진을 올린 20대 남성을 찾아 “법적 대응 또는 경기장 출입 금지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학과 교수는 “악플러 중에는 온라인에서와 달리 현실에서는 고립되고 그룹에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욕구를 악플로 분출한다. 현재로써는 법이나 제도로 막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악플러를 경기장으로 초청해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또 힘들게 뛰는지 볼 기회를 준다면 쉽게 비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