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까지 차오른 '빚'
충격이었다. 잘 나가던 회사가 급격히 기울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을 그만두고 가업을 살리기 위해 풍국면에 입사한 1993년의 실적이다. TV 광고까지 하며 한참 잘나가던 70년대 중반엔 연 매출이 30억원에 달했는데…. 하지만 십여년 만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기업 계열사들이 잇따라 국수 시장에 뛰어든 탓이었다. 작은 국수 회사들은 숱하게 넘어졌다. 업계에선 "풍국면도 곧 망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1t 트럭 몰며 전통시장서 직접 국수 팔아
유통망 개선으로 활로 찾아
이마트와 거래를 트기 위해 반년 가까이 대구 풍국면 공장과 이마트 서울 본사를 오갔다. KTX도 생기기 전이었다. 편도 7시간의 먼 길을 국수를 담은 가방을 들고 오갔다.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며 바이어를 만날 시간을 맞췄다. 고생 끝에 조금씩 살길이 보였다. 당시 개념조차 생소한 대형마트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제안해 이를 관철했다. 95년의 일이다.
꾸준한 품질 개선 덕에 기회 열려
하지만 좋은 제품을 만드니 시장에서 풍국면을 알아줬다. 대기업들도 함께 일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이 무렵 CJ제일제당과 거래를 시작했다. 인연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CJ제일제당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일제면소'가 내놓은 국수류는 우리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한 것이다. 꾸준히 성과가 나오면서 지난해 매출은 127억원이 됐다. 우리나라 국수 시장 규모는 연 1200억원 선이다.
1200억원 국내 시장 넘어 해외로
750만 그릇 분량.
지난해 우리 회사가 판매한 국수의 양(약 7500t)이다. 얼핏 많아 보이지만, 국내 시장 만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우리나라 국수 시장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살길은 해외뿐이다. 그래서 2017년부터 해외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성과도 조금씩 나온다. 첫해 26만 달러(약 3억원)였던 수출 금액은 지난해 57만 달러(약 6억6000만원)로 두 배 넘게 늘었다. 해외 시장 개척도 중간 도매상 등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한다. 젊은 날 이마트와 거래를 시작할 때처럼 해외 현지 바이어를 찾아내 수십통씩 e메일을 보내는 건 예사다. 무작정 현지로 찾아가기도 한다. 미국까지 갔다가 바이어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일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두드려 볼 생각이다. 현재 우리 풍국면의 영업사원은 나뿐이다.
면 종주국 일본에도 없는 설비 갖춰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비해 품질을 한 단계 더 높이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최근엔 6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넓히고, 포장 기계와 진공 반죽기 등을 설치했다. 국수 종주국인 일본 업체도 갖추지 못한 설비들이다. 거의 자체 제작하다시피 했다.
국수 끓이는 일을 번거롭게만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면 조리 시간을 '3분 40초'로 표준화하는 작업도 했다. 누가 언제 우리 면을 삶든, 저 시간만 지키면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진 세상이니 국수 삶는 시간을 재기도 더 수월해진 것 아닌가.
내겐 꿈이 있다. '세계 최고의 국수'를 만들어 '세계 최고'라는 일본 기업들을 이기는 일이다. 일본 국수가 북미나 유럽에서 특히 인기라고 한다. 선진국 시장에서 품질로 일본 국수를 꺾고 싶다. '안전품질식품(SQF)'이나 'FSSC22000' 같은 식품 안전 관련 인증을 받으려는 것도 선진국 시장에 제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다.
대구=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