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中드론, 언제든 스파이 돌변···"美 극약처방 꺼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1.26 13:20

수정 2020.01.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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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지역이 발칵 뒤집혔다. 한 청각장애 학생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경찰은 실종된 지 하루가 다 지나도록 소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꺼낸 것이 드론이다. 경찰은 드론에 장착된 열화상 카메라로 마을 주변에서 사람의 체온을 가진 물체가 없나 훑었다. 드론은 마을 인근에 잠들어 있던 소년을 발견했다.
 

[사진 셔터스톡]

같은 해 6월 미 텍사스주 콜먼 카운티에도 신고가 접수됐다. 인근 콜로라도 강에서 카약을 타던 시민 2명이 조난됐다는 내용이었다. 전화 통화는 됐지만 어두운 밤이라 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콜먼 카운티 측은 드론을 띄웠고, 강가 인근에서 불을 피우고 야영을 하고 있던 2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 공공기관이 중국 드론을 활용해 소중한 생명을 구한 셈이다.
 

2018년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서 열 감지 카메라를 장착한 DJI 드론의 모습.[AP=연합뉴스]

이런 ‘미·중 합작’ 이 더는 나오기 힘들 전망이다.

 
미 의회가 중국산 드론 퇴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초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미 의회는 DJI의 제품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방수권법’ 제정에 합의했다. WSJ는 “여야가 지난 몇 달씩 협상을 거쳐 법안 문구에 합의했다”며 “상·하원 표결과 대통령 서명이 남았다”고 보도했다. 국방수권법은 국가 안보에 위험이 된다고 여기는 외국 기업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이 골자다. 만일 법이 실제로 제정된다면 지난 14일 공식 서명한 미·중 ‘1단계 무역협정’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DJI의 드론이 캐나다 몬트리올 상공을 날고 있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중국산 드론 퇴출에는 미 정부도 나서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내무부는 최근 중국산 상업용 드론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활용될 위험이 크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내무부가 보유하고 있는 드론 사용을 조만간 영구 중지하기로 했다. 내무부는 지난해 10월 시범적으로 중국산 부품이 들어 있는 카메라 장착 드론 810기의 사용을 금지했다.


DJI 드론을 아프리카 소말리아 경찰이 2017년 사용하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우려하는 건 기밀 유출이다.

 
중국산 상업용 드론이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드론으로 촬영된 사진들이 백도어(시스템 보안이 제거된 비밀 통로)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미 육군은 2017년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DJI가 생산한 드론 사용을 중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지난해 12월 “몇 달 사이에 미 의회에 DJI 드론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 20여 개 발의됐다”고 전했다. SCMP는 “많은 미국인이 사용하는 DJI의 드론이 사실상 미 전역을 생중계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중국 정부의 ‘폐쇄 회로(CC) TV’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미국 의회가 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DJI의 MG-1S 드론이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논에 물을 뿌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중국 드론의 경쟁력이 뛰어난 것이 미국의 고민이다.

 
SCMP는 "미국의 안보 우려에도 현재 미국 전체 정부기관에서 사용되는 드론 80%는 DJI 드론"이라고 전했다.
 
당장 어류·야생동물관리국 등 미 내무부 산하 정부기관들은 DJI 드론 제품의 사용 금지에 반대했다. 산불·들불과 홍수 등의 진압·감시 활동 등이 어렵게 만들고, 비용이 많이 들 것이며, 드론을 대체해 유인 항공기를 활용할 경우 조종사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미 정부는 조난자 구조나 지도 제작, 동·식물 등 자연자원 상태 확인 등에도 드론을 쓰고 있다.
 
일단 미국 정부는 산불 진압과 훈련 등 일부 예외만 인정하고, 중국산 드론의 영구 금지 조치를 일단 밀어붙이기로 했다. 대신 미국산 민간 드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11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드론 조종사가 중국 DJI 드론을 작동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세계 드론 시장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이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규모를 키워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삼아 세계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당장 미국도 이런 중국산 드론을 미국이 시장에서 배제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서구의 일부 드론 회사들은 소비시장에서 DJI에 패배를 인정한 상태다.
 
미 정부 당국자들도 미국의 민간 드론이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선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중국은 군용 드론 분야에서도 미국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6일(현지시간) 중국 주하이시에서 개최된 에어쇼 차이나에 전시된 중국 항천과기집단공사(CASC)의 무인 스텔스기 'CH-7 HALE' 모델의 모습.[뉴스1]

 
중국은 미국산 드론이 지배하는 미래 공중전투에서 유일하게 도전할 국가다. 미군은 군용 드론 최강자로 약 30종, 800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2000년대 후반부터 뒤늦게 군용 드론 개발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20여 종을 개발해 미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군용 드론 윙룽2 가 지난 201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에어쇼에 등장한 모습.[사진 셔터스톡]

중국산 군사 드론이 맹활약하는 지역은 중동이다.

 
미국이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무기 수출 제한 정책을 취하는 사이, 그 틈새를 중국산 드론이 비집고 들어왔다. 지난해 12월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가 발간한 '중동지역의 무장드론'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 내전과 이슬람 국가(IS) 사태 등에서 중동 지역의 군사용 드론의 수요가 높아졌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중국산 군사용 드론이 급부상했다. 중동 국가들이 미국산 드론 대신 중국산 드론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중국 군용드론 '윙룽1'이 지난 2017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모스크바 에어쇼에 전시된 모습.[사진 셔터스톡]

이라크는 2015년 중국 항천과기집단공사(CASC)가 생산한 '차이홍-4B' 모델을 수입해 IS 근거지를 260회 공습했다. 예멘 내전에서 예멘 정부군을 지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CASC로부터 '차이홍-4H' 모델과 '윙룽' 모델을 수입했다. 2016년 미사일과 폭탄 적재량이 480㎏이며 비행시간 32시간을 자랑하는 '윙룽2' 모델을 30대 샀다. 중국의 해외 드론 수출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중국산 군용 드론의 가장 큰 경쟁력도 가격이다. 미국의 군사용 드론 MQ-9 리퍼는 2013년 기준 1690만 달러(약 190억2940만원)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 CASC 가 양산한 차세대 군사용 드론 '차이홍-5호'는 이것의 반값이다. 또한 중국은 미사일과 군사용 드론의 판매를 제한하는 국제조약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서명국이 아니다. 군사용 드론 판매에 있어서 제약을 받지 않는다.

[사진 셔터스톡]

 
중동지역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국산 군사용 드론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무기 수출 규제를 완화했다. 지난해 4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만 수출하던 군사용 드론을 한국, 인도를 비롯해 중동 우방국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 완화 조치에도 RUSI 보고서는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수입할 수 없는 곳으로 군용드론을 수출하고 있다”며 “중국이 앞으로도 요르단, 이라크와 중동지역 무장단체들에 핵심적인 드론 공급자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