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중국 시골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저장성에서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귀농 9년차 한국인 금주택(琴舟澤)씨다.
왜 중국에서, 그것도 시골에 내려와 사는걸까?
마을 사람들은 그의 귀농 결심에 "중국은 지금 농업정책이 매우 좋아져서, 즐겁고 행복한 농부로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지 정부의 관계자들의 정책 지원 도움도 컸다. 이렇게 새로운 인생 2막이 중국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곳에 120무 (畝, 1무는 약 200평)의 토지를 임대한 뒤, 키위를 심기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서울에서 자란 탓에 '농사'라는 것을 접해본 적이 없는 그에게 '경험 부족'은 최대의 리스크였다. 첫 묘목을 심었지만 가뭄과 폭염까지 이어져 묘목의 절반이 말라비틀어져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가자는 아내의 만류도 뿌리쳤다.
그는 키위의 대표기업 뉴질랜드 제스프리로 여러차례 건너가 기술을 배웠고, 전문가를 모셔와 진단을 받기도 했다. 중국에서 최고의 키위를 심는다는 결심을 세운 그는 농약, 화학비료 같은 것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다.
2018년 금씨의 과수원에서는 180톤(30만근)의 키위를 생산, 판매 수익만 400만 위안(약 6억 7000만원)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비가 적게 내려 조금 생산량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120톤(20만근)의 생산량을 기록해 300만 위안(약 5억 500만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곳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난처한 상황들이 많았다. 그의 중국말은 어눌했고, 시골 노인들의 사투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한국인"에서 "금선생" 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단지 시간이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하고, 키위가 자라면 마을 사람들과 나누고, 주변 농사일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그는 9년 동안 중국 농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중국 농업정책의 발전을 몸소 체험했고, 중국 신농촌 건설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외국인이기도다.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중국에 눌러앉아 농민으로 살아가면서, 중국 시골도 점점 좋아지고 살만해져 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중국의 농업의 발전 역시 많은 부분에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중국 농민'의 따뜻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키위가 익어가는 시기, 중국의 농부로서 그의 꿈도 여물고 있다.
차이나랩 이은령